북한이 내달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참가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김정은이 파병 장병들의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밖으론 다자 외교 무대에 나서고, 안으론 민심을 수습하면서 김정은의 건재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30일 김정은이 전날(29일) 평양 목란관에서 "해외군사작전에서 특출한 공훈을 세운 참전 열사들의 유가족들을 만나 따뜻이 위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이역의 전장에서 싸우다 쓰러진 우리 군관, 병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데려오지 못한 안타까움, 귀중한 그들의 생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안고 유가족들 모두에게 다시 한번 속죄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 5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러시아 파병 북한군 사상자를 600여 명으로 추산했는데, 이날 행사는 대량사상자 발생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잠재우는 목적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김정은이 특정 집단을 불러 모아 면전에서 고개를 숙인 건 이례적인 장면이다.
전사자들의 자녀를 지칭하면서는 "저 어린것들을 보니 더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면서"그들이 그렇게 떠나가면서 나에게 짤막한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지만 가정도, 사랑하는 저 애들도 나에게 맡겼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이날 행사에 혁명학원 원장과 국가 지도간부들이 참석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영웅들이 남기고 간 자녀들을 혁명학원들에 보내여 내가, 국가가, 우리 군대가 전적으로 맡아 책임적으로 잘 키울 것"이라고 했다. 혁명학원은 공화국 영웅 등 혁명 유가족의 자녀들이 입학하는 특수 교육기관이다.
또 김정은은 평양 대성구역에 전사자들을 기리는 '새별거리'를 조성하고 전투위훈기념비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김정은의 이런 '보훈 정치' 이면에는 파병 결정과 그에 따른 성과를 선대 지도자들과 차별화된 치적으로 띄우며 독보적인 지도자로 올라서기 위한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정은이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인공기로 감싼 전사자들의 초상을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전달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북한이 이날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주민들에게 알린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안팎으로 다자 외교 데뷔를 공식화한 셈인데, 김정은이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러시아 지도자들과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체제의 정통성과 김정은의 리더십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러시아와의 밀착 속에 방중 카드를 띄운 건 러시아 단일 변수 만으론 군사·경제적 성과를 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이 러시아의 한계를 알았을 것"(조현 외교부 장관, KBS 일요진단)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정세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중·러 모두 서방국가들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여기에 맞서는 북·중, 북·러, 북·중·러 간 결속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