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3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50% 관세 폭탄에 대응해 시 주석이 주최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까지 참석하며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다음 달 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은 불참한다.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인도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디 총리는 이번 방중의 목적을 ‘트럼프발 관세 위협’임을 명확히 했다. 중국 방문에 앞서 30일 일본을 찾은 모디 총리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불안정한 상태를 고려해 주요 경제국인 인도와 중국이 협력해 세계 경제 질서의 안정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는 지난 2020년 히말라야 라다크 국경에서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숨진 유혈충돌 이후 중국과 긴장 상태를 유지했지만, 미국의 관세 압박 이후 중국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엔 양국이 5년 만에 국경 무역·직항 노선 재개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중국 편중 외교엔 선을 그었다. 그는 SCO 정상회의 폐막 직후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참관하지 않고 중국을 떠날 예정이다. CNN은 “전문가들은 모디 총리가 시 주석과 무역과 안보에서 관계 안정을 추구하더라도 두 정상 간 오랫동안 지속한 개인적 신뢰 부족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여기엔 양국 간의 뿌리 깊은 영토분쟁이 자리한다. 1962년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른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 3488㎞에 이르는 실질 통제선(LAC)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여오고 있다. 최근 양국이 2020년 라다크 유혈 충돌 문제 봉합에 나섰다고 해도 인도 입장에서 중국의 군사력은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모디 총리가 열병식 무대에 오르는 건 큰 부담이다. AP통신은 “인도 총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중국이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열병식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와 나란히 서는 것을 자제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역시 SCO 정상회의만 참석하고 열병식은 참관하지 않을 예정이다.
모디 총리의 이 같은 모습엔 인도가 미국과 중국에 가진 복잡한 심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 시장을 견제할 만한 또 다른 거대 시장이지만, 국경을 접한 안보 위협 국가다. 반면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강한 압박을 벌이긴 해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최대 수출시장이다. 여기에 중국의 안보 위협에 함께해 줄 우군이기도 하다. 인도는 현재 중국 견제가 주 목적인 미국 주도의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 협의체)에 참여 중이다.
모디 총리가 3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을 강화한 것 역시 미국과 협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인도 내에선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히 강하다”며 “모디 총리가 방중 전 일본을 찾는 건 인도가 균형 외교를 취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모디 총리는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우크라이나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역시 인도가 관세 문제 대응으로 중국·러시아 등과 가까워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등에서 미국 등 서방과 등을 돌린 것은 아니란 메시지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CNBC 방송은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이란 이름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에서 균형을 추구해 왔지만 수십 년간 유지한 원칙이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인도는 어느 때보다 복잡한 외교적 곡예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