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을 기점으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가 발효됨에 따라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말 2.3%에서 17.7%로, 소비자 부담을 반영한 실효관세율은 18.6%(예일대 예산연구소 추정치)로 급등해 1933년 이래 최고 수준에 달했다. 이에 따라 세계 무역 질서는 미국의 소위 ‘트럼프 라운드’와 반쪽짜리 자유무역체제인 세계무역기구(WTO)로 양분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과연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은 ‘MAGA’(다시 미국을 위대하게)의 핵심 정책이다. 트럼프 정부는 불공정한 관세 체계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를 퍼줌으로써 세계를 먹여 살려 왔으나 이제는 관세 정책을 통해 무역수지를 흑자기조로 전환하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해 미국 경제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America)’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상호관세 발효가 바꾼 무역 질서
트럼프 라운드·WTO 체제로 양분
관세로 소비자 부담 67% 상승
인플레와 고용 악화 불러올 듯
미국 투자, 공급자 도약할 계기
국내 기업 ‘미국 기업화’ 위험도
수입 가격 낮춘 강달러, 무역적자 촉진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관세 정책의 주된 목적이 경상수지의 적자를 해소하고 균형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그 조건은 미국으로 생산 거점이 돌아와 수입이 줄고 무역수지 불균형이 시정되는 것임을 언급했다. 과연 트럼프 정부가 관세정책으로 ‘MAGA’에 성공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먼저 두 가지 논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 논점은 미국의 무역적자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는 불공정하고 잘못된 관세로 인해 미국이 세계로부터 수탈당해 왔다는 주장인 반면, 다수의 경제학자는 미국 무역적자에 관세보다 거시 경제적 요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즉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가계의 수입품 지출이 과다하기 때문이며, 그 이면에는 강달러가 수입품의 상대가격을 경쟁에서 유리하게 하고 미국 수출품의 상대가격을 불리하게 함으로써 무역적자를 촉진해 왔다는 것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과도한 정부 지출로 재정적자가 누적된 결과, 국내 저축률이 낮아져 투자율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재정수지 적자가 무역수지의 만성적인 적자 기조를 결정하는데 관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경제학계는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관세보다도 만성적으로 증가하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을 최대 과제라고 지적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7월 관세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73% 증가한 280억 달러 수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고, 2025년 연간 3000억 달러의 관세 수입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과연 이 엄청난 관세 수입을 누가 부담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트럼프 정부와 학계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전적으로 외국 수출업자가 부담한다는 입장인 반면 예일대 예산연구소(Yale Budget Lab)는 관세의 80~90%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지난 6월까지는 관세를 수출기업이 14%, 미국 수입기업이 64%, 소비자가 22%를 부담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미국 수입기업이 수입품 판매 가격을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오는 10월이 되면 수출기업은 수출 가격 인하로 관세 부담률이 25%까지 상승하는 반면에 미국 수입 기업 부담은 10% 이하로 낮아지고, 결국 미국 소비자의 부담은 67%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관세, 성장률 낮추고 실업률 높일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소위 ‘전문가’들은 또 틀렸다…관세는 우리나라에 ‘붐(boom)’을 가져올 것”이라고 썼다. 반면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블룸버그, 예일예산연구소, 골드만 삭스 등은 공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에 성장 위축과 인플레이션, 고용 악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Fed는 지난 7월 발표한 연구에서 관세 정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2% 이상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 체제를 신중상주의 체제로 변화시킴으로써 지정학적 재배치를 유발하는 결과로 관세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비용을 치를 위험이 크다는 점을 경고했다.
한편 예일예산연구소는 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제 성장률은 2025년과 2026년 각각 0.5% 포인트 감소하고, 장기적으로는 0.4%포인트 감소하는 한편, 실업률은 2025년 말 0.3%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을 지난 1월 2.7%에서 지난 7월 1.8%로 낮췄다. 한편 외국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가 지속해서 증가해 왔음에도, 미국 제조업 공동화의 장기 추세는 계속되고 있어 관세 정책으로 제조업이 부활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관세 인상이 무역적자 개선에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Gagnon, Peterson Institute). 관세가 수입과 수출을 동반 감소시켜 국민 소득을 저하하고,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관세보다는 재정 적자를 줄여 달러의 과대평가를 억제함으로써 국내 소비를 낮추고 저축을 증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관세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 확대 특히 트럼프 1기 관세 정책의 성과에 대한 평가 연구(NBER, David Autor 등)에 따르면,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럼에도 관세와 연관이 있는 지역에서 공화당이 높은 지지를 얻음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경제적 성과가 어떠하든 미국 정치에서 ‘관세 애국주의’ 열풍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IMF가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의 제목(‘지속하는 불확실성 속의 미약한 활기’)이 시사하듯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불확실성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불확실성 지수는 지난해 12월 3만375에서 지난 6월 8만4305로 2.8배 상승했고, 특히 세계 무역 불확실성 지수는 지난해 12월 6420에서 지난 6월 2만7299로 4.3배 상승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증대는 세계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세계 무역 성장을 둔화시킴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세계 경제 성장률 저하를 초래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을 저하함으로써 궁핍화를 촉진하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WTO는 2025년 세계무역 증가율 전망치를 당초 2.7%에서 트럼프 관세정책의 영향을 반영해 0.9%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한편 트럼프 1기에는 중국 기업이 대미 수출 관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베트남과 멕시코로 생산기지를 이동해 세계 공급 사슬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각국에 요구하는 대미 직접투자에 대해 각국은 최대한 협상을 지연하거나 투자를 장기화함으로써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에서 6위인 우리나라로서는 상호관세율 15% 합의가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달 26일 CNBC와의 대담에서 일본(5500억 달러)과 한국(3500억 달러)의 투자로 ‘국가경제안보기금’을 조성해 사회기반시설을 투자할 계획을 언급했다.
대미 투자 2000억 달러의 향방은 이 주장은 우리 정부가 발표한 바와 같이 우리 기업 주도로 5%만 직접 투자하고 나머지는 금융기관 보증 등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다. 더구나 미국 정부는 아직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에 대한 관세율 25%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리하면 마스가(MASGA)로 불리는 조선산업 협력에 대한 1500억 달러 투자를 제외한 2000억 달러에 대해서 양국은 투자의 형태와 내용 등을 두고 어려운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기존의 3500억 달러 투자에 이재명 대통령 방미 중 기업들이 제시한 1500억 달러를 포함한 총 투자 규모 5000억 달러는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의 설비투자 총액(1060억 달러)의 4.7배에 해당하며, 해외투자 총액(204억 달러)의 24.5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대미 투자 5000억 달러는 우리 기업의 글로벌 공급 사슬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국내 투자 능력과 금융기관의 지원 역량을 소진해 국내에 ‘투자의 공동화’ 사태를 초래하고, 우리 기업의 ‘미국 기업화’를 촉진할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에 탄력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기업의 자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최대한 단계적·장기적 투자안으로 협상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