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천안문(天安門) 망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진핑 국가주석, 푸틴 대통령이 함께 선다. 북·중·러 정상의 첫 한자리 회동이다. 10년 전엔 김 위원장 대신 박근혜 대통령이 서 있었다. 시 주석 오른쪽에 푸틴, 박 대통령 순이었다. 왼쪽엔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 한국 대통령을 예우한 의전이었다. 북한 2인자 최룡해 당비서는 사진 앵글을 벗어난 오른쪽 맨 끝이었으니. 중국은 1954년 망루를 찾은 김일성 수상이 마오쩌둥 주석 바로 오른쪽에서 환한 웃음 터뜨리는 사진을 만들었다. 자칭 ‘항미원조 전쟁’의 혈맹 접대였다. 단상 자리가 권력 서열인 크렘린 정치(Kremlinology)에선 주빈 오른쪽부터가 상석. 신화사에 따르면 중국은 이번엔 김 위원장을 시 주석 바로 왼쪽에 세워 ‘좌 정은, 우 푸틴’의 그림을 만든다. 북한엔 최고 대접이다. 한국 의전 서열 2인자 우원식 국회의장 자리가 궁금한 이유다.
북·중·러 3국 정상들의 첫 회동
제각각 이해갈등 반복해 오다
미·중 경쟁, 러-우전 이후 결집
‘신냉전’ 대비 면밀한 전략 시급
맥락의 핵심은 박 대통령을 10년 뒤 김 위원장으로 대체시킨 국제질서의 격변이다. 세 지렛대는 ▶미·중의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3국이 ‘일방주의 횡포’라 비판해 온 트럼프의 미국주도(‘America Only’) 정책이었다. 오래도록 이해충돌에 따라 제각기 흘러 오던 북·중, 북·러, 중·러 관계의 세 물줄기가 ‘이익의 공유’라는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지점. 그게 천안문 망루다.
#북·중=냉각기는 시 주석 집권 직전의 3차 북 핵실험(2013년) 말썽에 화난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였다. “자기 이득을 위해 미국에 맹목적 동조를 했다”고 북한은 배신감을 토로한다. 그해 말 친중 장성택이 처형되자 시 주석은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찾는다. 뒤이어 박 대통령이 망루 중심에 초대되고 최룡해는 잘 안 보인 배경이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김 위원장이 대형 청자 선물을 들고 시 주석을 처음 찾아간 건 트럼프와의 싱가포르 회담을 앞둔 2018년. 미국의 중국 압박도 본격화된 시기였다. 시 주석으로선 북·미 정상화 이후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우려돼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뒤에도 중국은 북한 미사일 재개를 묵인하며 러시아와 같이 유엔의 추가 제재도 막아주었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에도 애써 말을 아껴 왔다. 시 주석 3연임에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낸 이는 김 위원장이었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 초청의 시점은 묘하다. 최근 방미한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태도를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됐다”고 하자 “미국에의 종속”(환구시보)이라며 발끈한 중국이었다. 중·러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에게 부를 몸값이나 전략 유연성이 더욱 커질 김 위원장의 망루행 발걸음이 무거울 리는 없겠다.
#북·러=“우크라이나전 최대 수혜자는 북한”이라 할 정도의 브로맨스다. 파병·포탄의 대가로 북한은 첨단무기 기술, 에너지 특수를 즐긴다. 역시 북핵 실험 이후 소원했지만 지난해 푸틴이 24년 만에 평양을 찾고, ‘자동개입’의 북·러 신조약 체결로 군사동맹을 복구했다. 그 한 달 전 푸틴은 시진핑을 찾아 ‘무제한 파트너십’을 선언했었다. 당시 미 국무부는 “중국은 양손에 떡을 쥐려하지 말라”며 강력 경고했었다. 넉 달 뒤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전격 파병을 두고 외교가에선 “중국이 푸틴에게 북한 파병을 귀띔받고도 묵인해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속되고 있다. 과거 김일성 수상이 남침 직전 스탈린-마오쩌둥을 잇따라 찾아 3각 밀약을 했던 공산권의 은밀한 거래 관행 때문이었다.
#중·러=멀게는 공산 진영, 가까이는 유라시아 주도권을 놓고 본질적으론 경쟁·갈등이었다. 국경 분쟁에서부터 일대일로(중) 대 유라시아경제연합(러) 같은 확장의 접점에서였다. 그러나 미·중 경쟁, 나토의 동진 정책(2018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이후 ‘공동의 적’이 뚜렷해졌다. 미국의 대러 제재, 중국 압박 속에 양국 교역은 지난해 2450억 달러로 3년 전보다 66% 폭증이다. 러시아 원유 구매 역시 54% 증가한 620억 달러로 러시아가 사우디 대신 중국에 최대 원유 공급국이 됐다. 전방위로 적의 적은 친구다.
김정은·푸틴·시진핑의 밀착은 ▶핵보유국 ▶권위주의 리더십 ▶상호 경제 출구 ▶반미 이념·정서를 공유한다. 신냉전 구도를 촉발할 ‘뇌관’이다. 서방엔 “강하게 뭉친 적은 나눠 놓고 싸워야 한다”(나폴레옹)는 금언이 소환될 형국이다. 3국 연대라면 우리 외교 선택지도 극히 좁아진다. 비핵화 제재, 평화협상 모두 구두선이 된다. 한·미 동맹 바탕으로, 특히 일본과는 지역 안보까지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중·러 자극을 절제해 북한과의 밀착 위험을 최대한 분산(Hedging)시킬 수밖엔 없다. 아마도 천안문 망루를 가장 눈여겨봐야 할 이는 트럼프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공유와 결속을 죄다 돈과 비즈니스로 치환해 오랜 동맹을 헝클어 왔으니 말이다. 돈만으론 지킬 수 없는 것, 그게 자유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