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홍제정수장. 소방차 물탱크에 연결된 호수를 통해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왔다. 이 물은 경기도 여주소방서 소속 소방차가 홍제정수장에서 70㎞가량 떨어진 속초에 가서 받아온 물이다. 김원(50) 소방위는 “속초까지 1시간을 가서 30분 동안 물을 받고 다시 1시간을 운전해 돌아왔다”며 “오늘 3차례 왕복하는 것이 목표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강릉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 소방차 71대, 오늘부터 일 3000t 급수 강릉 지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자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이에 따라 31일 오전 서울·인천·경기·경북 등 전국 각지에서 71대의 소방차가 강릉에 집결했다. 지원 나온 소방차들은 동해·속초·평창·양양 지역 소화전에서 물을 담은 뒤 홍제정수장에 연신 쏟아부었다. 이날 하루 급수량은 약 2500t. 1일부터는 소방차를 담수량이 큰 물탱크 차량으로 교체해 하루 3000t을 급수한다.
극심한 가뭄 속에 강릉시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
%
아래로 떨어졌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지역 생활용수의 87
%
(급수 인구 18만명)를 공급하는 주요 식수원이다. 오봉저수지 물은 홍제정수장을 거쳐 공급된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4.9
%
로, 전날 15.3
%
에서 0.4
%
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평년 저수율(70.7
%
)의 21
%
수준이다.
식수 공급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저수율 15
%
선이 무너지면서 강릉시는 수도 계량기 75
%
를 잠그는 제한 급수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다만 제한 급수를 강제가 아닌 시민 자율 시행에 맡기기로 했다.
앞서 강릉시는 저수율이 25
%
이하로 떨어진 지난달 20일부터 아파트를 비롯해 5만3485가구의 계량기 50
%
를 잠그는 제한 급수로 절수 조치를 시행해 왔다. 이어 저수율이 15
%
대에 접어들자 지역 이·통장과 공무원이 절수 대상 세대를 방문해 계량기 추가 잠금을 권고하고 방법을 안내해 왔다. 또 상가 등을 돌며 물 절약을 호소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강릉시는 ‘계량기 75
%
잠금’ 외에도 지역 공중화장실 완전폐쇄 등도 검토하고 있다. 시는 1일 오전 가뭄 대응 비상대책 기자회견을 열고 격상된 가뭄 대응 조치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일단 수도 계량기 75
%
를 잠그는 방식의 제한 급수는 자율 시행에 맡길 것”이라며 “이후 추이를 지켜본 뒤 정확한 시행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일까지 전국 최대 100㎜ 비, 동해안 찔끔
시민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물 절약에 동참하고 있다. 유천동에서 반려견 셀프목욕탕을 운영하는 정환서(40)씨는 물 절약을 위해 지난달 12일부터 영업장 문을 닫았다. 정씨는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업장 문을 여는 게 마음에 걸려 닫았다”며 “하지만 언제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회산동에 있는 대관령샘터엔 페트병에 식수를 받아가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관령샘터는 롯데칠성음료에서 운영하는 샘터로 암반수를 취수한 뒤 정화 과정을 거친 물이다. 샘터를 찾은 한 주민은 “변기 물도 아껴 사용하고 빨래도 자제하고 있다”며 “지금 할 수 있는 건 절약뿐”이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31일 현재 전국 각지에서 강릉에 보낸 생수는 0.5L 81만2590병, 2L 54만5920병 등 총 1494t에 이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강릉시를 긴급 방문했다. 당시 오봉저수지를 둘러본 이재명 대통령은 장·단기 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정부는 이날 오후 강릉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자연 재해인 가뭄으로 재난사태가 선포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원도는 31일 강릉 가뭄 대책 회의를 열고 재난안전대책본부 수준을 2단계로 격상했다. 2단계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는 수준이다. 강원도는 리조트 등 대형 숙박시설 및 주요 관광지 등에 절수를 요청하고 휴교·단축 수업 검토 및 급식 대책 점검에도 나섰다.
한편 전국적으로 2일까지 최대 100㎜ 이상의 많은 비가 예고됐지만, 정작 비가 절실한 강원 동해안에는 가랑비 수준으로 약하게 내릴 것으로 보인다. 예상 강수량은 5~10㎜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