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기업 매물이 시장에 쌓이고 있다. 매각 추정가만 5조원이 넘어섰다. 하지만 고물가와 소비 축소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시장 추정가 5000억원이 넘는 대형 매물은 지난해부터 시장에 쌓이는 중이다. 국내 대형마트 3위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홈플러스는 지난달부터 공개경쟁 입찰을 진행 중이다. 법원 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3조6800억원 수준이다. 계속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으로 청산이 유리하지만 지역 상권과 공급망 위축 등 파급 효과가 크기에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에 대형마트 126개와 소형 슈퍼마켓 익스프레스 308개 등을 두고 있어 토지 자산이 3조원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선 매각가를 1조5000억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 쿠팡과 중국 알리 익스프레스가 홈플러스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으나 현재 시장에선 마땅한 인수 후보자가 거론되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는 수원 원천 등 전국 15개 점포를 올해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정리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통매각보다는 알짜 점포만 떼어서 파는 분할 매각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분할매각 시도에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은 청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도 내다봤다.
전자상거래 기업 11번가는 지난해부터 1년 넘게 매각 작업 중이지만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23년 기업공개(IPO) 무산 이후 대주주 SK스퀘어가 콜옵션(지분 재매입)을 포기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들이 나서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매각가를 시장 추정치의 절반 수준인 5000억~6000억원으로 낮췄지만 올해까지도 인수 의지를 보인 곳이 없다. 이런 가운데 알리 익스프레스 등 중국 기업이 국내 온라인 시장에 도전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중이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매각이 장기전에 접어들면 제값 받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애경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애경산업은 매각 과정이 순항 중이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2일 애경산업 본입찰 제안서를 제출했다. 주력인 석유화학과 섬유 업황 악화로 화장품과 에너지 등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에 적극적이다. 비누와 세제 등을 생산하는 애경산업의 매각가는 5000억~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홈플러스·11번가와 애경산업의 희비가 엇갈린 건 시장 상황과 관련이 깊다. 오프라인 시장은 다운사이징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고 신규 출점 점포도 매장 규모를 확 줄이고 있다. 일례로 올해 초 문을 연 롯데마트 천호점은 기존 점포 영업면적 평균 8200㎡(약 2500평)의 절반인 4538㎡(약 1374평)에 불과하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삼정KPMG에 따르면 국내 소매 시장의 온라인 침투율은 2023년 44.9%를 기록했다. 소매 상품 2개 중 1개가 온라인 시장에서 팔려간다는 얘기다. 정태경 한림대 교수(인공지능융합학부)는 “이커머스 시장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면서 언어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어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의 국내 온라인 시장 진출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수의 외식 브랜드를 보유한 사모펀드들도 브랜드 매각에 나서면서 시장엔 매물이 늘고 있다. KFC코리아와 비케이알(버거킹코리아 운영사)이 대표적이다. 외식 브랜드 다수는 코로나19가 끝나면서 차익실현을 염두에 두고 시장에 나왔지만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수요 감소와 소비 시장 침체로 인해 외식 브랜드 역시 적당한 인수자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