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에 ‘복식의 봄날’이 다시 돌아왔다. 남자 복식 서승재(28)-김원호(26·이상 삼성생명) 조가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1위의 위엄을 확인했다.
서-김 조는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아디다스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남자 복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천보양-류이 조(11위)를 맞아 40분 만에 2-0(21-17, 21-12)으로 완승했다. 첫 게임은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중반까지 13-17로 끌려간 서-김 조는 이후 전열을 정비해 8연속 득점하며 승부를 뒤집었고 결국 4점 차로 승리했다. 이어진 2게임에서는 한 차례도 리드를 내주지 않은 채 점수 차를 벌리며 9점 차로 낙승했다.
서-김 조는 사실 8년 전인 지난 2017년에 처음 복식조로 호흡을 맞춰 국제무대에 나섰다. 당시에는 두 선수 모두 기량과 국제 경험이 충분치 않아 이렇다 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듬해까지 손발을 맞추다가 각자 다른 파트너를 찾아 헤어졌다. 다시 만난 건 지난 1월부터다. 세대교체 등 대표팀 개편 과정에서 나란히 전성기에 접어든 두 선수가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게다가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 등 복식 종목에서 세계를 평정했던 박주봉 감독이 지난 4월 대표팀을 맡으면서 서-김 조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두 선수는 올 시즌 BWF 주관 대회 중 최고 등급(수퍼1000) 3개 대회(말레이시아오픈·전영오픈·인도네시아오픈) 우승을 석권하는 등 5승을 거뒀다. 랭킹 포인트가 급증하면서 재결합 7개월 만인 지난달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번에 세계선수권까지 우승하며 ‘최강 복식조’임을 인증했다. 서승재는 지난 2023년 이 대회에서 강민혁(국군체육부대)과 짝을 이뤄 남자 복식 정상에 올랐는데, 파트너를 김원호로 바꿔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사실 김원호는 ‘배드민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지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김동문 현 대한배드민턴협회장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합작했던 길영아 삼성생명 배드민턴 감독이다.
남자 복식은 세계 정상을 수차례 호령했던 한국 배드민턴의 중심 종목이었다.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박주봉-김문수 조가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2000년대 들어선 김동문-하태권 조와 이동수-유용성 조가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유 조는 2000년 시드니와 2004년 아테네에서 2연속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고, 김-하 조는 2004년 아테네에서 이-유 조를 꺾고 남자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0년대 들어선 이용대-유연성 조가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그 뒤를 이었다.
최근 한국 배드민턴은 여자 단식 세계 1위 안세영(삼성생명)에게만 의존하는 분위기였는데, 서-김 조가 세계 최강으로 부상하면서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이 함께 이끄는 ‘쌍끌이 시대’를 맞게 됐다.
한편, 안세영은 전날 열린 대회 여자 단식 4강전에서 중국 천위페이(4위)에 0-2(15-21, 17-21)로 져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23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 세계개인선수권대회에서 단식 금메달을 따냈던 안세영은 대회 2연패에 도전했지만, 숙적에 발목을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