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대한민국은 경제 대국 중에서 보기 드문 천연자원 빈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 매장된 광물 하나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이례적인 희소식이 들린다. 주인공은 원소기호 W인 텅스텐이다. 텅스텐은 세계 매장량이 적고 수요는 많은 희소금속 중 하나다. 금속 중 가장 단단하고 녹는점도 가장 높다. 탄화텅스텐으로 가공하면 강도와 경도가 비금속인 다이아몬드에 필적할 정도인 데다 고온에도 잘 견디고 밀도도 높아 쓰임새가 많다.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초고온 핵융합 장비의 핵심 소재 중 하나가 텅스텐이다.
이처럼 강점이 많으니 자연스레 텅스텐은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떠올랐다. 특히 반도체와 항공우주산업에 없어선 안 될 자원이고, 첨단 무기에도 꼭 필요한 소재다. 국가 생존이 걸린 '전략 물자'인 것이다. 고강도, 고밀도, 고융점 특성 덕에 벙커버스터 미사일, 관통용 포탄과 총알, 로켓과 우주선 엔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양자 컴퓨터 공정, 전기차 배터리, 핵융합 발전기, 방사선 차폐 장치 등에 활용된다. 전통산업에선 전구 필라멘트, 절삭공구 등에 쓰인다. 문외한 눈에도 텅스텐 수요는 계속 커져 자원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텅스텐 세계 공급량의 약 80%를 중국이 맡아 왔다는 점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세계 텅스텐 매장량 440만t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에 묻힌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쟁탈전이 가열되자 미국이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줄이려고 견제에 나서고 중국은 희토류 같은 희소 자원을 무기화하면서 텅스텐 세계 공급망에도 이상이 생겼다. 미국이 중국산 텅스텐 수입을 규제한 데 이어 중국도 텅스텐을 전략광물로 지정하고 채굴량을 줄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각지 안보 불안으로 탄약과 무기 수요가 늘면서 텅스텐 수요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텅스텐 국제 가격이 치솟아 최근엔 1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텅스텐 수요 70%를 중국산 위주로 수입하는 우리나라도 타격을 봤다. 하지만 물길이 막히면 다른 곳이 뚫리는 게 이치다. 오랫동안 채광을 중단했던 한국 텅스텐 광산으로 서방 진영이 시선을 돌린 것이다.
특히 단일 광산으로 세계 최대 규모라는 강원도 영월 상동광산이 조명 받고 있다. 캐나다의 알몬티 인더스트리가 과거 대한중석 소유였던 이 광산 채굴권을 인수해 상업 생산을 준비 중이다. 알몬티는 채굴한 텅스텐을 미국에 보내 가공한 뒤 약 절반씩 미국과 한국에 팔 계획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해 상동광산에 조사단을 파견할 만큼 관심이 크다. 30여 년 만에 다시 문 여는 상동광산의 매장량은 약 5천800만t으로 추산되고 품질과 채산성도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산 텅스텐은 1950~1970년대 세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수출 효자 품목이었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산에 밀리자 1994년 상동광산도 폐쇄됐다. 생산할수록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우리 광산을 동면에서 깨어나게 한 나라 역시 중국인 건 역설이다. 중국산 공급 감소는 한국산 텅스텐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시켰다. 매장량 800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울진 쌍전광산도 생산 재개 준비가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두 광산에서 생산하는 텅스텐 물량으로 국내 수요 절반 정도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 땅에서 캔 전략 자원을 우리 주요 산업에 활용하고 수출까지 하는 장면을 보게 되니 뿌듯하다. 외국 기업이 상당한 권리를 가진 건 아쉽지만, 이번에 얻은 교훈을 관련 정책을 되짚을 계기로 삼는다면 실기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관계 당국이 국내에 매장된 전략 광물 자원의 활용 전략과 탐사 계획 등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하는 한편 희소 핵심 자원의 해외 개발과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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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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