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일간 FT 보도…"러시아·인도와 힘 합쳐 서방에 도전 촉구"
트럼프 '고관세' 위협 속 "시진핑, 글로벌 거버넌스 중심 강조"
"시진핑, SCO·전승절 열병식 통해 세계질서 재편 야망 드러내"
英 일간 FT 보도…"러시아·인도와 힘 합쳐 서방에 도전 촉구"
트럼프 '고관세' 위협 속 "시진핑, 글로벌 거버넌스 중심 강조"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와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통해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드러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고관세·무역 압박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가운데 시 주석은 '화려한' 두 행사를 활용해 러시아와 인도 등과 힘을 합쳐 미국 등 서방에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 시 주석은 SCO 톈진 정상회의에서 "세계가 지금 격동과 변화를 겪고 있으며 질서 있는 다극적 (체제의) 세계를 옹호해야 한다"면서 "자유 무역과 더 정의롭고 합리적인 세계 거버넌스 시스템을 옹호한다"고 촉구했다.
그의 이 발언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관세·무역 압박의 주요 피해 대상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등의 면전에서 한 것이자 사실상 동의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FT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무차별적인 고관세 드라이브로 동맹국은 물론 적대세력 모두에 타격을 주는 상황에서 시 주석은 자신이 글로벌 거버넌스 중심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시 주석이 주권 평등, 국제법 지배, 다자주의 등 원칙을 바탕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면서, 이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모디 총리도 서명한 '미래 10년(2026∼2035년) 발전계획'이라는 제목의 SCO 톈진 정상회의 선언문에는 "지정학적 대립의 격화로 세계와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협과 도전이 가해지고 있다"며 "특히 국제무역과 금융시장은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다"는 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고관세 부과 위협이 명시됐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소수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독점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FT는 SCO 톈진 정상회의에 이어 다음 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주도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 화상회의가 열려 재차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위협이 논의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전날 SCO 톈진 정상회의를 겨냥해 "보여주기 행사"라고 일축하고 중국과 인도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전쟁 기계에 연료를 공급하는 악당"이라고 규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3일 베이징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통해 중국이 전후 국제질서의 수호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고 FT는 진단했다.
시 주석이 열병식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여러 정상 앞에서 최첨단 군사 장비를 선보이려는 목적 이외에도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국 공산당이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전후 질서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FT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자 간 시스템을 뒤흔드는 것을 기회 삼아 시 주석은 국제 질서를 재해석하면서 다극화된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 단체 중국 미디어 프로젝트 이사인 데이비드 반두르스키는 "중국은 자국이 다자주의 창시자이며 이제 다자주의를 새로운 포용적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이 신문은 특히 최근 몇 개월 새 시 주석의 '역사 재해석' 행보에 주목했다.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승전 기념에 퍼레이드를 관람했던 시 주석이 당시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벌어진 주요 전쟁의 무대였다. 두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와 독일 나치즘에 대한 저항의 주력이었고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에 중추적 공헌을 했다"고 한 발언은 역사 재해석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앞서 항일전쟁 시기를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1937년)을 항일전쟁 기점으로 삼아 1945년 일본 패망까지 '8년 전쟁'으로 공식화했었던 중국 당국이, 시 주석 주도로 2017년부터 류탸오후(柳條湖) 사건으로 촉발된 만주사변(1931년) 기점의 '14년 전쟁'으로 바꿔 이를 초·중·고교생의 교과서에도 실었다.
근래 중국 당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이른바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쟁을 했다는 기존 인식을 바꿔 공산당이 항일전쟁의 주축이었다는 방향으로 '중국 항일전쟁사'를 수정했는가 하면 교과서 개정에도 착수했다.
이 역사서의 개정 증보판에서 중국 공산당은 '중류지주(中流砥柱·역경에 굴하지 않는 튼튼한 기둥)'로 표현됐다.
중국 당국은 전승절을 계기로 '공산당 = 항일전쟁 주축' 인식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 일본이 패망한 역사적 사실에, 중국 공산당의 역할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일본 군국주의를 공식적으로 종식한 1951년 미국 주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후 대만을 중국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명시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중국의 대만 흡수통일 명분을 쌓으려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