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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中억류 풀려난 韓선원들…'핏자국 실종' 결국 미제 남나

중앙일보

2025.09.01 21:44 2025.09.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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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역에서 발생한 한국인 선원 실종 사건으로 억류됐던 화물선이 사건 발생 2개월 만에 풀려났다. 중국 당국이 실종자들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조사를 마친 가운데 선박 내부를 피로 물들인 사건은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양경찰 이미지그래픽


두 달 만에 선박·선원 풀려나

2일 외교부와 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화학제품운반선인 파나마 선적 A호(1만6000t급)에 대한 억류가 지난달 풀렸다. 중앙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A호에 대한 중국 측의 출항 허용 결정은 지난달 15일 이뤄졌으며, A호는 상하이에 있는 조선소에서 정비를 받은 뒤 지난달 22일쯤 출항했다.

실종사건 전 A호에는 한국인 선원 9명과 필리핀 선원 14명 등이 탑승하고 있었다. 배가 중국 해역을 지나던 지난 6월 23일 오후 7시30분쯤(현지시각) 한국인 선원 가운데 B씨(50대)와 C씨(30대) 등 2명이 실종됐다. A호는 중국 당국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이후 두 달가량 억류됐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중국 측 수사는 결국 두 사람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고 한다.

B씨 등이 사라진 후 실종사건으로 신고는 됐지만, 현장 및 주변인 조사 과정에선 살인 사건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다수 확인됐다. 실종된 선원 2명 중 B씨는 기관장이며, C씨는 하급자인 기관사였다. 기관장이 선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승선원 평가’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화학제품운반선(PC)선 시운전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뉴스

사건 당일 A호에서는 주방에서 사용하던 주방용 칼이 사라졌다. 실종 후 B씨의 방 내부는 피로 흥건했고, 방에서부터 선미까지 이어지는 핏자국도 발견됐다. 또 일부 선원들 사이에선 “B씨 방문 앞에 붙어 있던 ‘쉬는 중이니 방해 말라’는 내용의 쪽지에 적힌 필체가 B씨가 아닌, C씨의 것으로 보인다”는 진술도 나왔다.

배에 남은 선원들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A호에 탔던 선원들은 선사 측 자체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교대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선사 측과 소통하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수색 공조 거부…해경선 “현장 못 봐 아쉽다”

A호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은 부산해양경찰서에도 접수됐다. 해경은 중국 측에 수사 및 수색 공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부됐다. A호 인력 송출·관리는 부산 지역 업체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부산해경 관계자는 “A호 선원들의 귀국 일정을 파악 중이며, 귀국 후 안정되면 참고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내사 단계의 사건이어서 살인사건 수사로 전환될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경 내부에선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에 나포된 중국어선.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최정호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부 교수는 “살인 사건으로 의심되는 정황만 있을 뿐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으로 보인다”며 “지금 확보된 증거로는 실종자 2명 사이에 통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영장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 문제와 관련해 양국이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협의체처럼 형사 사건에서도 수사 주체 사이에 소통이 강화되면 보다 정확한 수사와 정보 공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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