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승우 기자] 손흥민(33, LA FC)의 로스앤젤레스 첫 안방 무대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었다. 스코어는 아쉬운 패배였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교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자부심은 더욱 인상 깊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2일(이하 한국시간) "손흥민의 홈 데뷔전은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선 특별한 장면이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사회가 보여준 열기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라고 전했다.
손흥민은 1일 LA BMO 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FC와의 메이저 리그 사커(MLS)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90분을 모두 소화했다. 홈팬들 앞에 처음 나선 경기였으나, 팀은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You are my SONshine', 'Welcome to Sonny LA'와 같은 현수막이 내걸리고 수많은 태극기가 휘날렸다. 클럽은 관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로 스탠딩 구역까지 열었고, 이 표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손흥민이 공을 잡을 때마다 쏟아진 함성은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ESPN은 "손흥민은 단순한 선수가 아닌 존재였다. 로스앤젤레스는 그를 뿌리의 연장선처럼 환영했다"고 묘사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오늘은 정말 특별했다. 팬들이 너무 훌륭했기에 더 아쉽다. 그들은 더 좋은 결과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오늘은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팬들의 환영이 따뜻했다. 다시 홈에서 뛰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최대 한인 거주지가 있는 로스앤젤레스, 그 중심 코리아타운은 손흥민을 크게 환영했다. 코리아타운 기반 서포터 모임인 '타이거스 서포터스 그룹(TSG)'은 홈 데뷔전 응원에 앞장섰다.
TSG 회원 샘 코는 ESPN과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얼굴이자 아시아 전체의 슈퍼스타다. 우리의 영웅이 드디어 LA에 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멤버 대니얼 정은 “꿈이 현실이 됐다.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TSG는 2017년 소수 교민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멕시코, 엘살바도르 등 다양한 문화권 팬들을 품으며 성장했다. ESPN은 "TSG는 단순한 응원단이 아니라 코리아타운과 LA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소개했다.
손흥민 합류는 축구장을 넘어 도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ESPN은 "손흥민의 유니폼은 지금 전 세계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LA FC 티켓 값은 무려 187%나 올랐다.
코리아타운 식당·주점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한 업주는 "예전에는 원정 경기 때만 팬들이 모였는데, 이제는 홈경기 때마다 가게에 발 디딜 틈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식당 '브라더스 코리안 BBQ' 사장은 매장 외벽에 손흥민 벽화를 그리며 자부심을 표현했다. 선수 측 요청으로 철거 요구가 있자 그는 기발하게 자신의 얼굴을 덧칠하며 "나는 손흥민의 열혈 팬이다. 그가 LA에 와서 너무 자랑스럽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득점은 없었지만 손흥민은 여러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전반 종료 직전 골키퍼의 선방을 이끌어낸 슈팅, 후반 78분 골대를 강타한 장면, 추가시간 두 차례 시도까지 경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스티브 체룬돌로 LA FC 감독은 "손흥민은 옳은 위치를 잡았고 좋은 기회를 두세 번 만들었다. 아직은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며 신뢰를 보였다. 데이터상으로도 LA의 기대득점(xG)은 1.48로 샌디에이고(0.93)를 앞섰으나 효율에서 밀려 패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손흥민은 한동안 센터서클에 서서 팬들의 환호를 감상했다. 이후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결과는 아쉽지만 팀은 끝까지 싸웠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거 올리비에 지루와의 동행 실패로 팬심을 잃었던 LA FC는 이번 손흥민 영입에 거는 기대가 크다. ESPN은 "손흥민은 이미 MLS 최고의 투자이자 지역 사회의 상징이 됐다. 교민 사회는 그를 '우리 선수'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TSG 회원 존 리는 "손흥민이 온 뒤 코리아타운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이 축구와 LA FC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멤버는 "손흥민은 우리를 대표한다. 코리아타운 전체가 자랑스럽다. 한국인은 언제나 전폭적으로 응원한다"라고 덧붙였다.
결과는 패배였지만 손흥민의 홈 데뷔전은 단순한 패배 그 이상이었다. 교민 사회의 자부심과 MLS 흥행의 상징이 동시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제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손흥민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떤 새로운 역사를 쓸지 주목된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