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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이목 쏠리는 서울... 2025 키아프·프리즈 서울 미리보기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2025.09.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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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중 미술계와 컬렉터가 가장 바빠지는 아트위크가 돌아왔다. 올해 키아프(Kiaf)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면면을 들여다본다.

지난 프리즈 서울 부스 전경. 사진 프리즈 서울

9월 3일, 서울은 예술로 뜨거워진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와 세계 2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이 동시에 열리면서다. 지난 2022년 국내 미술 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하며 달아올랐던 열기가 다소 누그러졌지만,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은 잇따라 서울에 분점을 내며 가능성을 길게 내다보는 추세다. 실제 매출액으로 성과를 삼는 아트페어 특성상 정량적 지표는 둔화됐지만, 정성적 지표는 사뭇 다르다. 키아프의 경우 꾸준히 관람객이 늘어 지난해 약 8만 2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박서보, 묘법 No. 220715, 2022, 샘터 화랑. 사진 키아프 제공

올해는 어떨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 탓에 미술 시장 역시 차분하게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내공을 키우는 모양새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모두 올해 테마로 미술 생태계의 ‘협력’을 내세운 것도 이를 반영한다. 그 속에서 작고 강한 신진 갤러리들의 약진, 해외를 무대로 영향력을 떨치는 한국 예술가들의 활약, 국내 컬렉터들의 높아진 안목 등 희망적인 움직임도 끊임없이 감지된다.

풍성한 기획으로 질적 내실 다지는 키아프
해마다 아트페어에서 내세우는 숫자는 얼마나 많은 갤러리가 참가했냐는 거다. 하지만 키아프는 올해 방향을 전환했다. 얼마나 좋은 갤러리가 나서는지에 방점을 찍었다. 참여 갤러리의 수준과 전시 콘텐트의 완성도를 높인 밀도 있는 아트페어를 만든다는 의지다. 올해는 20여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이 중 50곳이 해외 갤러리다. 주요 구성으로는 156개의 갤러리 부스가 펼쳐지는 ‘키아프 갤러리즈’, 신진 작가와 신생 갤러리를 조명하는 ‘키아프 플러스’, 10명의 작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키아프 하이라이트’가 있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큐레이터와 6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을 진행한다. 수집과 진열을 키워드로 각 작가가 바라본 시선을 만날 수 있을 예정. 키아프·예술경영지원센터·프리즈 서울이 공동 기획한 ‘토크 프로그램’은 국내외 미술계 주요 인사를 초청하는 행사로 동시대 예술의 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키아프 2024 행사 전경. 사진 키아프
키아프·인천공항 특별전 ‘We Connect, Art & Future, Kiaf and INCHEON AIRPORT’ 2024. 사진 키아프

모든 시장이 그렇듯, 아트페어도 사람이 모이고 교류하는 장이다. 특히 전 세계 유명 미술관 관계자와 큐레이터, 컬렉터가 모이는 자리다 보니 이 기간에 특별한 경험이나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행사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올해 주제로 ‘공진(Resonance)’을 내세운 키아프는 서울시·정부·유관 기관과 협력해 풍성한 도심 속 예술 축제를 기획했다. 이미 지난달 22일부터 인천공항에는 국내 주요 작가 대표작 50여점이 입국객을 반기는 중이다. 5회를 맞는 공동 기획전의 풍경이다. 신세계 스퀘어·해치마당 미디어월 등 서울 도심 주요 미디어월에서는 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이 상영된다. 이는 서울시 전시 플랫폼 ‘미디어 아트 서울’과의 협업으로, 9월 19일까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도심의 새로운 풍경으로 드러낸다는 취지다.

우고 론디노네, flashing light, 2023, 에스더 쉬퍼. 사진 프리즈 서울 제공

첫 장외 전시 거점 마련한 프리즈 서울
프리즈 서울은 120개 갤러리가 참가한 가운데,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담론을 조명한다. 이중 한국 근현대 미술이 중심축으로 선보여질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박서보·하종현·김윤신 등 거장부터 신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국제갤러리, 정상화·존배·김보희 작가를 선보이는 갤러리 현대,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 중인 서도호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리만 머핀 등이다. 고서부터 20세기 후반 주요 작품에 이르기까지 페어의 격을 높이는 섹션으로 유명한 ‘프리즈 마스터스’는 올해 전후 및 근대 미술을 집중 조명하며 일본 추상미술, 대만의 아방가르드, 한국의 모더니즘 회화를 다룬다. ‘포커스 아시아’는 아시아 지역의 신진 작가 10인을 조명해 동시대의 역동성과 새로운 예술 흐름을 보여줄 예정이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 외부 전경. 사진 박성훈, 프리즈 서울 제공
프리즈 하우스 서울 내부 전경. 사진 박성훈, 프리즈 서울 제공

무엇보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이목을 끈 건, 첫 상설 공간인 ‘프리즈 서울 하우스’의 개관 소식이다.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 개최 계약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연중 운영하는 거점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내년 재계약설에 힘을 보탠다. 서울 약수동 주택을 개조한 프리즈 서울 하우스는 4개 층으로 이뤄진 총 210㎡ 규모의 전시 공간으로 2개의 전시실과 정원을 갖추고 있다. 프리즈가 앞서 런던에서 개관한 전시 공간 ‘No 9. 코크 스트리트’의 성공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한 국제 예술 교류 공간이 될 예정이다. 디렉터 패트릭 리는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미술계에서 서울이 문화적 중심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면서 “프리즈 하우스 서울의 개관전으로 김재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언하우스(UnHouse)’를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가고시안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APMA 캐비닛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을 연다. 무라카미 다카시,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 2025. 사진 가고시안

다채로운 예술 행사로 물드는 서울
아트페어는 한 공간에서 여러 갤러리와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시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 키아프 운영위원회 팀장이자 예술 기획자 박준수 디렉터는 “갤러리 리스트와 사전에 갤러리들이 발표하는 프리뷰를 보며 미리 선행학습을 하면 좋다”며 사전에 방문할 갤러리를 골라 두라는 팁을 건넸다. 또 “당장 작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컬렉터라면 VIP 프리뷰 날 ‘아트시’나 ‘오쿨라’ 등 예술 플랫폼에서 발표하는 베스트 부스 10을 체크해두고, 한가할 때 다시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주요 아트페어 및 행사. 그래픽 디자인 최승이 디자이너
아트위크 주요 전시 리스트. 디자인 최승이 디자이너.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Illuminated: A Spotlight on Korean Design)' 전시 전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간수문전시장, 2025. 사진 WeCAP,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아트위크 기간 동안 도심 전역에서는 다양한 장외 전시와 행사가 열린다. 갤러리들이 밀집한 서울 한남동·청담동·삼청동에서는 하루씩 특별한 저녁 행사를 준비해 뜨거운 밤을 예고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디자인 플랫폼 ‘디자인 마이애미’도 파리에 이어 서울의 문을 두드린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연말 ‘바젤 마이애미’가 열리는 기간에 개최하는 위성 페어로 시작해 지금은 국제적인 디자인 박람회로 발돋움했다. 아시아 최초로 서울 아트위크를 겨냥해 입성한 것은 지금 한국 예술과 디자인이 얼마나 전 세계에서 역동적인지 가늠하게 한다. 행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불가리와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올해 3회를 맞는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신작 공개 기회를 얻는 프로그램이다. 첫해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하이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가 후원한다. 지난 2023년 우한나 작가, 2024년 최고은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국제 미술계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자연스럽게 올해 수상자는 누굴지 이목이 쏠렸는데,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의 감각 구조를 탐구하는 임영주 작가가 선정됐다. 임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5’의 최종 후보 작가이기도 하다.

임영주, Calming Signal, 2023/2025, 3채널 영상 설치. 컨셉 이미지. 사진 프리즈 서울 제공

수상작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은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내는 ‘진정 신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진정 신호는 한 자리를 뱅뱅 돈다거나 고개를 좌우로 젓는 등 본능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 특징이다. 작가는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반복되는 집단적 제스처와 생존을 위한 본능적 동작 사이의 기묘한 유사성을 포착했다. 이번 작업은 리서치에 기반한 영상 설치물로 신체의 회전 동작, 전통춤의 리듬 이미지를 격자 구조 안에 병치시켜 집단 불안 속에 형성되는 사회적 리듬과 감각의 패턴을 시각화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발산하는 불안과 감정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신작은 프리즈 서울에서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불가리는 이 어워드를 기념해 9월 4일, 임영주 작가의 예술 제작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불가리 프라이빗 토크 세션’을 개최한다.

임영주, THETA, 아르코 아트센터 ‘diplopia’ 전시 전경, 2020. 사진 프리즈 서울 제공

“불안정한 세계를 감지하고 이해하려는 방식들”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임영주 작가. 사진 작가 제공


수상작 ‘카밍 시그널’은 불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견의 이유 없는 회전이나 땅을 파는 움직임이 불안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강강술래 같은 한국의 회전 춤이나 여러 문화권의 회전 의식도 결국 불안정한 세계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특히 어떤 회전 춤은 지구 자전축 각도로 돌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 자전축이 변한다는 연구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 불안정한 축 위에 서 있다고 느꼈다. 서울대 자전축 연구팀과 동물 행동 심리 연구가 등 여러 전문가를 만났고, 안무가들이 긴장을 풀 때 움직임을 관찰하며 작품의 층위를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예정인가.
“전시장 삼면과 바닥을 그리드 구조로 구성할 예정이다. 세 개의 스크린을 설치해 관객은 각자의 위치에서 화면을 경험하게 된다. 프리즈가 제시한 ‘미래의 공유지’라는 주제를 거대한 담론보다는 각자 감지한 불안과 반복을 펼쳐놓고 함께 바라보는 자리로 해석했다.”

과학과 미신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과학과 미신을 대립시키기보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본다. 흥미롭게도 오컬트 종교 교본들은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만, 과학 교과서의 실험 지시문은 명상적이었다. VR이나 AI 같은 첨단 기술도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의 연장선에 있다. 제3의 눈, 명상법 같은 전통 수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카밍 시그널’ 역시 불안정한 세계를 감지하고 이해하려는 서로 다른 방식들이다.”

평소 관심 있는 건 무엇인가.
“‘안 보이는 것’과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의 차이. 세상의 ‘빈 공간’이란 결국 죽음처럼 누구도 가보지 못했지만, 모두가 상상하는 곳이다. 나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인간의 상상력과 믿음의 구조를 줄곧 탐구하고 있다.”

앞으로 작업 계획은.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사유를 확장한 작업 ‘고 故 The Late’을 선보인다. 그리고 내년을 목표로 전작인 ‘인간과 나 (2021)’ 이후 새로운 출판물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게 책은 가장 급진적이고 미래적인 매체다. 최근 몇 년간의 작업과 연구 과정에서 나온 글들을 엮어볼 예정이다.”



이소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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