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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격태격 고고 자매 “우승 경쟁은 양보 없죠”

중앙일보

2025.09.03 08:01 2025.09.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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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투어 역대 2번째 ‘챔피언 자매’ 고지우(왼쪽)와 고지원. 난생처음인 동반 인터뷰에 “낯간지럽다”면서도, 고씨 자매는 골프공을 들고 활짝 웃었다. 김경록 기자
자매는 난생처음인 동반 와이드 인터뷰에 “낯간지럽다”고 했다. 어색함도 잠시, 어릴 적 추억 보따리를 풀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웃음꽃을 피웠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대 두 번째로 자매 챔피언이 된 고지우(23)-지원(21) 자매를 최근 경기 용인의 한 골프코스에서 만났다.

2002년생 고지우와 2004년생 고지원은 KLPGA 투어를 대표하는 실력파 자매다. 2022년 데뷔한 고지우가 최근 3년 연속으로 1승씩 거두며 먼저 이름을 알렸다. 뒤이어 입문한 고지원은 지난달 제주삼다수 마스터스를 제패하며 박희영(38)-주영(35) 자매에 이어 ‘챔피언 자매’가 됐다.

고지원은 “고향(제주)에서 열린 대회라 정말 많은 분의 응원을 받았다. 우승을 확정하고 살짝 울컥했는데, 언니의 눈물을 보고 울음이 싹 그쳤다”며 웃었다. 동생 말에 언니 고지우는 “내가 원래 눈물이 많다. 더구나 처음으로 우승한 동생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18번 홀부터 펑펑 울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린 시절의 고지우(오른쪽)와 고지원. [사진 고지우]
제주 중문에서 나고 자란 자매는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연습장 출퇴근을 거쳤다. 합기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전남 완도로 양식장 운영을 위해 가족과 헤어져 ‘기러기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중·고교 교사로 일해 여느 유망주 부모처럼 딸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기가 어려웠다.

자매는 불평불만 없이 꿋꿋이 기량을 쌓았다. 고지우는 “서귀포의 학교에서 제주의 연습장까지 매일 버스로 오가야 했다. 문제는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이라는 점이다. 수업이 끝나면 정류장까지 매번 전력 질주했다. 많게는 두 번 환승해야 해 보통 체력훈련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옆에서 듣던 고지원은 “언니는 의지가 정말 강했다. 나는 ‘다음 버스 타자’고 졸랐는데, 언니는 나를 끌고 가다시피 해 버스에 태웠다”며 “전지훈련 상황도 비슷했다. 해가 좀처럼 지지 않는 호주 겨울 캠프로 기억하는데, 매일 36홀씩 돌고 밤늦게까지 훈련하면 녹초가 된다. 그럴 때마다 언니가 와서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 보내주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제주의 지역 유망주로 성장한 자매는 프로 데뷔를 위해 경기도로 올라왔다. 별명이 ‘버디 폭격기’인 고지우는 특유의 공격 본능을 앞세워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고, 2023년 6월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아이언샷이 장기인 고지원의 발전 속도도 만만치 않다. 올해 우승 1회, 준우승 1회로 언니에 뒤지지 않는 성적을 내고 있다.

10년 넘게 붙어 다니다 보니 자매는 서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고지원은 “언니는 생각보다 비거리가 많이 난다. 또 샷 기술이 좋아 버디도 많다”고 칭찬했다. 이어 고지우는 “지원이는 하루 못 치더라도 절대 낙심하는 법이 없다. 나랑은 정말 다르다”고 말했다. 단점을 묻자 전형적인 자매의 모습이 됐다. 고지우가 먼저 “지원이는 필드에서 조금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면 한다”고 먼저 매섭게 지적하자, 고지원은 “어릴 적에 언니는 화를 잘 참지 못했다. 그걸 보며 ‘나는 표정을 숨기는 선수가 되자’고 다짐했다”고 맞받았다.

자매는 4일 개막하는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에 도전한다. 만약 둘이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서 우승을 놓고 다툰다면 어떤 장면을 연출할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생 고지원이 먼저 대답했다.

“우리 둘이 마지막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남겨놓았다면? 양보 없이 그 퍼트를 꼭 넣고 말겠다. 1승의 내가 3승의 언니를 따라잡으려면 쉽게 양보할 수 없다.” 옆에서 동생의 도발을 듣던 고지우가 빙그레 웃었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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