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에는 도덕적인 선과 악이 없다. 이념도 없다. 그러나 바둑돌에도 신분과 지위가 있다. 지금 인공지능(AI) 시대의 포석에서 가장 존중받는 돌은 ‘삼삼’이다. 오랜 세월 누추한 천덕꾸러기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보석처럼 반짝이게 된 삼삼의 변신은 바둑은 물론 AI란 존재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삼삼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다. 3선과 3선의 교차점이란 의미로 삼삼이라 부르게 됐다. 4선과 4선의 교차점엔 화점(花點)이란 근사한 이름이 붙어있고 3선과 4선의 교차점은 소목(小目)으로 불린다. 좌표를 그냥 이름으로 삼은 것은 삼삼이 유일하다.
천덕꾸러기 삼삼의 스타 등극
AI 바둑의 가장 큰 불가사의
인간 고수들, 아직 비밀 못 풀어
삼삼은 왜 천덕꾸러기였을까. 기성 우칭위안은 “바둑은 조화”라고 갈파했는데 바둑을 요약한 최고의 한마디로 꼽힌다. 바둑은 가로·세로 19줄, 361로로 구성된다. 그중에서 제3선은 실리선, 제4선은 세력선이라 불린다. 이 두 선은 포진의 핵심인데 삼삼은 ‘실리+실리’여서 극단적이며 조화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화점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력+세력’으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치우쳐 있는 것 아닌가. 바둑동네에선 실리를 일컬어 ‘현금’ 또는 ‘현찰’이라 불러왔다. 바둑은 최종적으로 현금을 누가 많이 손에 쥐었느냐의 싸움이다. 그래서 실리란 단어는 중요한 이슈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든다.
하나 ‘현금을 밝힌다’는 문장에 이르면 분위기가 묘해진다. 돈은 귀중하지만 돈을 밝히면 살짝 격이 떨어지는 세상사와 딱 일치하게 된다. ‘실리+실리’인 삼삼은 너무 돈을 밝힌다. 그렇게 밝히는 바둑은 고급 바둑이 아니다. 그래서 멋을 생각하는 사람은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반면에 화점은 풍성한 느낌을 준다. 세력이란 존재는 실리를 안겨줄지, 지푸라기를 안겨줄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발전성이 있다.
“바둑은 3선과 4선의 균형이다”라고 한다. “바둑은 3선과 4선의 갈등이다”는 말도 있다. 눈앞의 실리를 거머쥘지, 미래를 향해 투자할지 매번 갈등하는 게 바둑이란 뜻이다.
일본 막부시대 최고의 바둑가문인 본인방가는 문하생들에게 삼삼 착수를 아예 금지했다. 삼삼은 이로부터 본인방가의 귀문(鬼門)이라 불리며 기피 대상이 됐다. 삼삼은 발전성이 없고 내 작은 땅을 완강히 고수할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만약 바둑을 지망하는 학생에게 “발전성 없는 바둑”이라고 말한다면 그것보다 큰 욕은 없다.
1933년 중국의 천재 소년 우칭위안이 최후의 본인방 슈사이와 대국하면서 처음 3수를 화점-천원-삼삼에 두어 대각선으로 연결시켰다. 본인방을 앞에 두고 본인방가의 금기를 범했다는 비난이 일어났다. 훗날 현대 일본인 기사 중 최강자로 꼽히는 사카다 에이오 9단이 중요 시합에서 삼삼을 두어 곧잘 승리했다. 조치훈 9단도 가끔 삼삼을 두었다. 이 두 사람은 당대의 천재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반항아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했다.
다케미야 9단의 우주류가 최고의 인기를 끌던 시절, 삼삼을 둔다는 것은 “나는 꿈이 없다”는 선언이나 비슷했다. 중앙을 지향하는 화려한 우주류로 인해 삼삼의 이미지는 더욱 추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AI가 삼삼을 들고나왔다. 그냥 삼삼을 둔 게 아니다. 상대가 화점을 두면 곧장 삼삼에 침입하는 훨씬 이상한 수법을 들고나온 것이다. 예전이라면 초장에 삼삼을 들어가는 것은 소탐대실의 극치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였다. 싹수없는 바둑, 발전성 없는 바둑이란 비난이 쇄도했을 것이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AI를 인정하지만 삼삼을 파는 저 수만은 따라 둘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터움의 대명사였던 이창호 9단조차 삼삼에 들어간다. 삼삼은 이리하여 AI 바둑에서 가장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존재가 됐다.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삼삼이 그리 좋은 곳이라면 왜 처음부터 삼삼에 두지 않을까. 왜 상대가 화점을 둔 다음 삼삼에 들어갈까. 또 화점은 왜 두어 삼삼을 당하나. 이게 인간 고수들이 풀지 못한 의문이다(AI여, 부디 답해 다오).
인간 최강자 신진서 9단은 이런 선문답을 보내왔다. “삼삼 침입은 좋은 수. 화점도 아직 좋은 수. 서로 피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AI를 만들었지만 AI는 저 홀로 질주하며 비밀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그 비밀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이런 현상이 비단 바둑만의 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유랑의 길을 걸어온 삼삼이 AI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됐다. 그에 얽힌 비밀은 아직 풀 길이 없지만 삼삼에 좋은 이름이라도 하나 새로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