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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칼럼] 당원 혁명의 저주

중앙일보

2025.09.03 08:28 2025.09.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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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운대 교수
“전한길을 품은 장동혁 후보가 당 대표로 당선됐다.” 실제로 전한길의 지원이 없었다면 장동혁 의원은 대표가 될 수 없었을 게다. 본인도 그걸 안다. 그는 자신의 당선을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승리”라 불렀다.

전한길의 포부는 이보다 원대하다. “예언하겠다. 전한길을 품는 자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도 받을 수 있다.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다음 대통령까지 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줄 대는 이들도 생겼다. “벌써 인사나 내년 공천 청탁이 들어온다.” 제 공천을 셀프로 받아서 남에게 양보까지 한다. “대구시장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해야 한다. 설령 공천을 받아도 이 위원장이 나온다면 무조건 양보한다.”

강성 환호 속 흔들리는 합리 보수
전한길의 세계관이 국힘을 지배
중도층 시선은 차갑게 변해버려
당원 혁명이 저주로 되돌아온 꼴

이 발언이 알려지자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그와 절연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하지만 장 대표는 그와 절연할 수가 없을 게다. 그 세력이 지지층의 핵심이니 그들을 내쳤다가는 당장 자리를 내놔야 할 거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한길이 그저 ‘의병’이라는 칭호에 만족해 당 밖에서 죽은 듯 지내주기를 바라는 것뿐. 하지만 제힘에 도취된 그가 유일한 생업으로 남은 유튜브 방송을 점잖은 방식으로 할 것 같지는 않다.

당 안에는 김민수 최고위원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석방하라. 국민은 헌법 재판관에게 법 절차까지 무시한 채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심판할 권한도 부여한 적 없다.” 이게 최고위에서 한 발언이란다.

장동혁 대표의 생각은 강성 지지층을 중심축으로 삼은 채 중도를 품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왼쪽으로 움직이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에 있는 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보수 정당을 만들겠다.”

‘매력’은 접어두고 우선 중도층이 국힘에 대해 가진 ‘혐오감’부터 덜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당 차원에서 전한길과 김민수가 대변하는 세력과 절연해야 하는데, 그 경우 자칭 ‘자유 우파 애국시민들’이 반발할 게 빤하다.

그러니 매사에 양자역학적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가령 윤 전 대통령 접견의 공약. 일정을 미루면 면회를 안 가면서도 갈 수가 있잖은가. 이런 식으로 대충 뭉개며 여당과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혹시 돌파구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것도 쉽지 않다. 소수당이 다수당과 싸우는 무기는 민심인데, 민심을 업지 못한 상황에서 국힘이 벌일 수 있는 싸움이라야 원내에선 필리버스터나 상복 투쟁, 장외에선 ‘자유 우파 애국시민들’과 함께 여는 아스팔트 집회 정도뿐.

장동혁 대표야 어떻게 당선이 됐든 앞으로는 중도가 납득하는 합리적 보수의 길을 걷고 싶을 게다. 문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주변에 있던 세력이 중앙으로 들어와 당의 안방을 차지해 버렸다는 데에 있다.

이게 뭐 새로운 일은 아니고 민주당은 이미 그 과정을 거쳤다. 사실 전한길의 롤모델은 김어준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당선자들이 손에 당선증을 들고 김어준의 좌우로 들러리 서던 장면을 생각해 보라.

김어준은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의 방송에는 여당 대표,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 정무수석 등 당정의 최고위 인사들이 출연한다. 민주당의 정치적 의제 설정, 프레임 생산, 지지층의 결집이 그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전한길 또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 세계에선 계엄은 정당하고, 탄핵은 부당하며, 이번 선거는 조중동 올드미디어의 좌익합작 프레임을 파괴한 “당원 혁명”이다. 그 세계의 거주민들은 곧 시작될 “장동혁-김민수의 원투펀치”를 기대한다.

장동혁 대표는 자신의 당선을 위해 이들을 당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이들 애국시민들은 반복되는 패배 속에서 오랜만에 승리감을 만끽했다. 한번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이상 앞으로 더 극성스러워질 것이다. 당이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려면 당심을 장악한 이 세계관과 싸워야 하나, 세계관은 논리나 팩트로 깨지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참에 아예 전한길을 국힘의 김어준 역할로 품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어준 모델을 벤치마킹하더라도, 민주당만큼 재미를 볼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윤어게인’이라는 세계관은 가망이 없다. 그것은 실현 가능한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자신들의 미련함을 애써 부인하는 심리적 장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라스푸틴은 그나마 산수라도 되는 반면, 국힘의 한길법사 경우에는 산수조차 안 된다. 김어준은 나름 치밀한 계산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인다. 전한길은 현장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르는 쪽이다.

핸드폰은 내 맘대로 쓰다 버릴 수 있는 도구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나 자신이 그것이 만들어낸 복잡한 사회관계망에 걸린 벌레 신세가 된다. 유튜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치인들의 ‘도구’가 아니다. 그들의 ‘주인’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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