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급등하고 있다. 마트에서 가장 흔히 판매되는 20㎏ 한 포대 가격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6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보다 17.2%, 평년보다는 14% 높은 수준이다. 일부 지역 마트에선 한 포대가 7만~8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소비자물가 2%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상승세다. 쌀값은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도 1년 전보다 11% 올라 19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자칫 식당 밥값도 자극할 수 있는 오름세다.
문제는 쌀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창고에는 국내산과 수입산 합쳐 111만t 넘는 쌀이 쌓여 있다. 결국 가격 불안의 배경에는 정부의 수급 관리 허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약 366만t으로 예상 소비량보다 12만t 이상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36만t을 공공 비축으로 매입하고, 26만2000t을 선제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했다. 쌀값 하락을 막아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급 관리를 그르쳐 지난해 수확한 햅쌀 재고가 소진되자 가격이 급등했다. 정부 창고에는 쌀이 넘쳐나는데, 정작 시중에서는 품귀에 시달리며 가격이 치솟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쌀값 급등에 산지 유통업체들의 벼 확보 경쟁은 뜨거워졌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격리로 지난해 벼 확보가 부족했던 업체들이 일제히 벼 매입에 나선 것이다.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산지 유통업체의 쌀 재고량은 4월 말 71만t으로 전년보다 21만t이나 줄었다. 게다가 지난해 벼가 잘 여물지 않아 3년째 생산량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보유 양곡 3만t을 방출하고, 마트 할인 폭을 늘리겠다고 나섰지만 햅쌀 출하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쌀이 남아돈다는 기존 상식을 뒤집는 이번 가격 불안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은 지난해 수확량 급감으로 올해 들어 쌀값이 폭등했다. 지난 3월에는 1년 전보다 99.5%까지 치솟기도 했다. 마트에서는 ‘1가구 1포대’ 구매 제한이 걸렸고,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이 캐리어에 한국 쌀을 가득 싣고 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한국에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그간 쌀 과잉 생산에 대비해 쌀을 매수해 주는 양곡관리법도 마련됐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필요한 수급 관리는 구멍이 뚫렸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의 부작용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농가 보호와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시장격리 같은 단선적 대책뿐 아니라 정밀한 수급 예측과 탄력적 대응이 필요하다. 국민 1인당 하루에 밥 두 공기도 안 먹는 시대라지만 쌀은 여전히 주식이다. 몇 안 되는 자급 식량이기도 하다. 정부는 쌀 수급 관리에 한 치의 빈틈도 보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