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하면서 딸 주애도 국제무대에 등판했다. 주애는 2013년생으로, 열두 살에 외교 활동을 개시한 건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 중 최연소다.
다만 김정은은 예상과 달리 3일 오전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행사 참관을 위한 천안문 망루에는 주애를 대동하지 않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패권에 맞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에 주애를 등장시키는 건 중국이 불쾌해하거나 김정은으로서도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주애가 26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다자외교 무대까지 감당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방중으로 주애가 북한의 4대 세습 후계자로 낙점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역시 후계자의 중국 방문 동행을 후계 구도 구체화의 기회로 삼아 왔다.
다만 아직 41세로 젊은 김정은이 딸을 조기에 내세운 건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도 이례적이다. 북한 매체들은 아직 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으로만 표현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대외적 공식화가 먼저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여기엔 김정은의 개인적인 성장 배경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생모는 북송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고용희로, 김정일의 정실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에 셋째 부인이라는 이유로 김정은은 아버지와 떨어져 ‘은둔의 유년기’를 보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백두혈통’임에도 정통성에 끊임없는 의구심을 받아 온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은 집권 뒤 약 7년 지난 2018년에야 시진핑을 만났다. 북·중 관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 온 고모부 장성택의 숙청, 핵실험을 비롯한 고강도 도발 등으로 눈 밖에 나면서 중국의 ‘축복’ 자체를 받지 못하고 상당 기간 외교적인 고립을 겪은 것도 주애의 동행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김정은이 다자외교 무대 데뷔 과정에서 주애를 소도구로 활용한 것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린 자녀를 챙기는 모습을 통해 잔혹한 독재자 이미지를 희석하고 보다 극적인 주목 효과를 연출하려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