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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일그러진 법이 만든 일그러진 세상

중앙일보

2025.09.0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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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1975년, 공익법인을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익법인법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기부금 관련 사건이 터지면 여지없이 기부금품법이 소환되는 것처럼, 공익법인과 관련된 사회 문제들이 터지면 어김없이 공익법인법이 소환되지만 사실 이 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공익법인법이 공익 현장에 미치는 실무적인 영향이 어떤지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법이 국소적 영향력을 갖고 있고 거의 사문화되었다는 말을 오랫동안 들었던 터라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연구 결과는 의외였고, 그 반대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이 법이 소수의 법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맞지만, 의외의 측면에서 모든 공익법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적인 파워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 지배방식이 민주화된 현대 사회에 맞지 않게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다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해두었는데 이 논리로 보면 공익법인의 페르소나는 사회의 기여자가 아니라 잠재적인 범죄자에 가깝다.

50년간 우리 사회는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바뀔 정도로 달라졌다. 이제는 사익을 좇으려고 꼼수를 쓰는 법인보다는 김장하 선생이나 빌 게이츠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는 선량한 기여자들이 공익법인을 통해 일하려고 나서는데 이 법은 여전히 과거의 동굴 속에 남아 있다.

기부된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게 하고, 공익 목적 사업할 때 일일이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도록 하며,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도록 인건비를 제한하여 좋은 인력들이 공익 분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공익법인법의 규율을 받지 않는 민법상 비영리법인들도 법률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주무관청의 재량에 의해 알게 모르게 법을 따르도록 요구받는다는 사실이다.

50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공익법인법은 방치되어 있다가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처럼 정치적으로 혼탁한 사건이 발생하면 혼령처럼 살아서 나오곤 하면서 갈수록 일그러져 왔다. 이렇게 공익을 범죄로 인식하도록 하는 기조를 버리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공익은 더 망가질 수 있다. 더 많은 민간의 공익 활동을 통해 좋은 사회를 가꾸기를 바란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선진국들이 공익을 확대하기 위해 거친 연구와 그 성과들을 고려해 보더라도 지금이 바로 새로운 법안을 도입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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