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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주명리, 혹세무민인가? 고뇌하는 지혜의 재건

OSEN

2025.09.0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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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없다> 의 저자, 이재은 박사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를 읽고 반박문을 썼던 날, 조카에게서 따끔한 지적을 받았습니다.

"삼촌의 글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혹세무민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뼈아픈 말이었습니다. 사주명리의 본질과 순기능만을 원론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질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나의 오랜 기억, 그리고 수십 년간 쌓아온 학문적 고뇌를 담아, 사주명리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내 삶의 가장 오래된 기억의 한 조각은 어머니의 당부로 채워져 있습니다. 누렇게 바랜 책을 펼쳐 든 길거리 점쟁이에게서 들었다며 "올해는 칠팔월에 물 조심해야 한다, 길 걷다 넘어질 수 있으니 항상 발 밑을 살펴라" 하시던 목소리. 이재은 박사는 이런 행위를 혹세무민이라 비판합니다. 근거 없는 미신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사주라는 허상을 통해 불안을 조장하며 돈벌이를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내겐 그 기억이 혹세무민의 잔상이 아닌, 어머니의 따스한 염려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성당에 가서 신부님의 말씀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듯, 그 말씀은 나의 한 해를 무사히 넘기는 경계(警戒)이자 위안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결국 삶의 현실로 돌아와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박사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길을 조심하는 습관, 주변을 살피는 마음가짐은 사주를 통해 얻은 지혜이며, 이는 긍정적 자기 암시와 현실적 실천으로 이어져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토정비결을 믿든, 하느님을 믿든, 진솔한 믿음과 실천은 우리에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응답을 건넵니다. 현대 과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발현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지요.

통계적 근거 부재의 함정, 그리고 바넘 효과

이재은 박사는 사주명리가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인과적 논리가 부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세력으로 사주명식을 뽑아서 여러 사람의 사주를 봐주었는데, 모두가 신통하게 잘 맞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만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더욱 인과적 논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도 나오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는 것입니다. 바넘효과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이나 경험이 마치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심리 현상입니다.

사주명리학에도 바넘효과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바넘효과로 보아 사주명리학이 엉터리라는 논리는 부적절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심리학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니까요. 사주 상담에서 바로 이런 바넘효과를 활용하여, 내담자에게 공통적인 조언을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통찰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사주쟁이들이 문제입니다. 

질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야 함에도 수천만 원짜리 굿을 권하고, 부적을 팔아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하는 행위는 지혜를 오염시키는 독(毒)과 같습니다. 사주에 재성이나 관성이 없다고 하여 평생 혼자 살라고 권유하는 것은 인생의 길을 가로막는 장벽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혹세무민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이 박사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사주명리학을 동양의 지혜라 칭송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뼈를 깎는 자기성찰, 지혜의 재건을 위한 고뇌

이재은 박사가 지적한 문제의 본질은 결국 사주쟁이라 불리는 수많은 이들이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시장에 난립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거나 했다고 내세우는 소위 사주쟁이가 100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한때 사주명리학 관련 'OO 협회'의 회원증을 소정의 금액만 내면 마구 발급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OOO철학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상담업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자격 검증 제도가 부재한 채, 개인의 역량과 양심에만 내맡겨져 있으니 혼란이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사주명리학이 동양의 지혜라느니, 5,0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느니, 과학적인 분석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인문학이라느니 외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헛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에는 명리이론의 표준화와 자격 검증의 제도, 검증된 상담 프로토콜 등의 정비 등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이 각 개인의 깜냥과 행위자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시장 기능에 내 맡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 박사의 지적을 단지 비판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학계 전체에 던지는 뼈아픈 경고이자, 지혜를 파는 상인이 아닌 절망을 치유하는 상담가로 거듭나라는 준엄한 외침으로 받아들입니다. 사주명리학의 본질은 혹세무민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주명리학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 박사의 비판을 기꺼이 수용하고, 이 지혜가 다시 본래의 빛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부디 이 글이 단순한 변명이 아닌, 우리 학계 전체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진심 어린 고뇌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여수 남다른

글을 기고한 명리학자 남다른 선생은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한 뒤 ㈜비씨카드에 입사해 정보시스템, IT기획담당 임원(CIO)으로 일했다.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에서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고 현재 CCQ 포춘 대표이사이다. 저서로는 생극제화의 원리를 규명한 '여수명리'(2020년)가 있는데, 단순한 점술가가 아닌 명리학의 학문적 지위를 재정립하는 연구자로서 전통 이론의 현대적 확장과 체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OSEN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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