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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중해도 열병식은 불참, 물밑선 대미협상…모디의 미·중 줄타기 외교

중앙일보

2025.09.0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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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50% 관세 부과를 계기로 겉으론 중국·러시아와 밀착하고 있지만, 일본과 독일 등 미국 우방국과 협력도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속내가 엿보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31일 7년 만에 중국을 찾아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시 주석을 만난 모디 총리는 “인도와 중국은 파트너이지 적수가 아니다”라며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선언했다. 두 나라는 지난 2020년 히말라야 인근 국경에서 벌어진 양국군의 유혈사태 이후 긴장상태를 유지해 왔다.

모디 총리는 SCO 회의에서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껴안고 환담을 나누며 중국이 주도하는 ‘신 반미연대’의 주축인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 압박이 오히려 반미주의와 저항을 강화시켰다”며 “대중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략적 기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SCO 회의 전후 모디 총리의 행보는 이와 달랐다. 그는 SCO 폐막 이후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 불참했다. 중국 방문 직전인 지난달 29~30일 일본을 찾아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3일(현지시간)엔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을 만났다.

모디 총리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양국과 인도의 경제·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인도와 일본은 중국의 안보 위협에 맞선 ‘쿼드(Quad)’ 회원국으로서 군사 장비 공동 개발과 방위산업 협력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바데풀 장관은 모디 총리를 만난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미온적인데, 러시아의 전통적 국방 파트너인 인도도 평화적인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과의 무역협상도 신중한 태도로 물밑 조율을 시도 중이다. 미국이 지난달 27일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아 50%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인도는 관세 맞불 대신 소비세 인하로 당장의 상황 관리를 택했다. 인도 정부는 오는 22일부터 생활용품과 전자제품 등 수백개 생필품의 소비세를 인하할 방침이다. 인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제이슨 밀러 전 수석보좌관과 데이비드 비터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로비스트로 고용해 미국 정부와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인도의 실용주의 외교는 건국때 부터 이어진 ‘비동맹 중립주의’의 유산이다. 과거 미·소 냉전 시절에도 인도는 전략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저렴하게 제공받았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선 뒤로는 미국과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인도의 줄타기 외교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도 뒷따른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동맹국만 남은 상황에서 인도는 중국의 미끼를 물든지, 트럼프를 달래든지 해야 할 것”이라며 “전략적 자율성을 갖고 가려면 기존의 균형추 역할을 넘어 지속적인 동맹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창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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