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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방병원 난립 호남, 목포서 또 보험사기”…경찰, 의사·환자 53명 송치

중앙일보

2025.09.04 01:21 2025.09.04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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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에서 침 시술을 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전남 목포시에서 한방병원의 진료기록 등을 꾸며 정부의 요양급여비를 허위로 타낸 한방병원 운영자와 의사·한의사, 허위 입원환자 등 53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 요양급여비는 한방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는 돈이다.


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최근 허위 환자를 입원·치료한 뒤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한 것처럼 속여 요양급여비를 타내거나 청구한 혐의(의료법 위반·특경법상 사기)로 목포 A한방병원 원장 B씨(40) 등 의사·한의사 8명과 간호사·병원 직원 29명, 허위 입원환자 16명 등 5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방 일러스트. 사진 pixabay

경찰에 따르면 B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의사·한의사를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린 뒤 허위 요양급여비 6500만원을 받아낸 혐의다. B씨 일당 중 일부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고령의 한의사 등이 A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것처럼 진료기록을 꾸며 보험금을 타낸 혐의 등도 받고 있다.


경찰은 원장 B씨의 아버지(70)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의사인 아들을 내세워 이른바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는지 여부도 추가로 살펴보고 있다. 사무장병원은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족이나 지인·전문의 등 명의로 개원한 후 병원을 실제 운영하는 곳을 말한다. 사무장병원은 의료법상 불법이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를 청구할 수 없다. 요양급여비 청구 후 사무장병원임이 적발되면 공단은 지급된 요양급여비를 전액 환수한다.
한의원 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경찰은 A병원 외에도 허위 진료기록서를 꾸며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받는 병원 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 비중이 높은 한방병원의 보험사기 및 사무장병원 등은 3~4년 전 대대적인 단속·적발 후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광주지법 형사2부(부장 김영아)는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한의사 C씨(68)의 항소를 기각했다. C씨와 함께 기소된 한방병원 행정국장(59)도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C씨는 2019년 10월부터 광주 자신의 한방병원에서 허위 입원환자들에게 가짜 입·퇴원확인서 등을 발급해 총 6517만원의 보험금을 받도록 알선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지난 3월에는 한 공무원이 2023년 광주의 한방병원 입원 당시 모친을 간병인으로 고용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방 사진. 중앙포토

호남 지역 한방병원에서 보험사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한방병원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전남·전북에 한방병원이 밀집하다 보니 생존을 위해 가짜환자 유치와 허위 진료·치료 등을 통해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광주(89곳)와 전남(29곳)·전북(37곳) 등에 개설된 한방병원은 총 155곳이다. 이는 10년 전인 2015년(125개)보다 24.0%(30개) 늘어난 것으로, 전국 한방병원(600개)의 25.8%에 달한다.


광주·전남·전북 인구가 전국의 9.6%(491만2824명)임을 감안하면 한방병원은 인구대비 2.5배 이상 많다. 인구 932만명인 서울(90개)과 비교했을 때는 491만명인 호남의 한방병원 수가 72.2%(65개) 많다.
김영옥 기자

광주는 또 올해 6월 기준 인구 10만명당 한방병원 수가 6.4곳으로 전국 평균(1.17곳)보다 5배 이상 많다. 이어 전북(2.13곳), 전남(1.62곳), 인천(1.61곳), 경기(1.12곳), 대전 (1.11곳), 대구(0.97곳), 서울(0.96곳) 등의 순이다. 광주는 10만명당 한방병원 수가 가장 적은 제주(0.15곳)에 비해서는 한방병원이 42배 이상 많다.


한방병원이 많다 보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요양급여비도 호남 지역이 월등히 높다. 통계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광주·전남·전북의 한방병원 요양급여비가 전국 총액(3948억원)의 35.6%(1404억원)에 달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중 광주는 인구 1인당 한방병원 요양급여비가 6만1612원에 달했다. 이는 전국 평균(7718원)의 8배에 달하며, 전북(1만7365원), 전남(1만3555원)도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광주의 1인당 한방병원 요양급여비 지급액은 1인당 급여비가 가장 적은 경북(1243원)의 50배에 달한다.
김영옥 기자

전문가들은 호남에 한방병원이 몰린 원인을 지역 대학 연고지와 양방보다 한방병원을 신뢰하는 노령 인구가 많은 특성 등을 꼽는다. 전남과 전북에는 각각 동신대와 원광대에 한의대가 있고, 타 지역에서 한의원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한방병원을 여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타 지역보다 입원환자 유치가 유리한 점을 한방병원의 밀집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젊은층이 많은 수도권 등은 환자들이 입원보다 외래 진료를 선호하는 데 반해 호남을 비롯한 지방은 실비보험 혜택을 받으면서 입원·요양을 선호하는 고령층이 많다는 주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한 지역에 특정 형태의 병원이 많다 보면 병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과잉진료나 보험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시 모니터링과 제보 등을 통해 보험사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경호.황희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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