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 일본 측이 주최하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하기로 했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해 한·일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무성의한 태도를 바꾸지 않아 갈등의 불씨가 계속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며 "오늘 오전 불참 결정과 그 배경에 대해 일본 측에 잘 전달했고 일본은 우리 입장을 경청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한국인 노동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온전하게 개최되도록 적극적으로 일본 측과 협의했고 실제로 양국 간 진지한 협의가 진행됐다"면서도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추도사에 담는 게 핵심이었지만 일본은 올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사도광산 한국인 노동자에게 합당한 애도가 있으려면 (그들이 겪은) '고난의 근원과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를 언급해야 한다”며 "한국인 노동자들이 '의사에 반해 강제로 동원돼 노역했다'는 점이 적절하게 표현돼야 추모의 격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일 양측이 제시한 추도사 문안에서 노동 강제성에 관한 구체적인 표현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이 보이콧한 가운데 일본만 참석해 반쪽짜리로 열린 첫 사도광산 추도식에서도 일본 측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강제 노동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인사말'(일본 정부 요청으로 '추도사'에서 명칭 변경)에서 한반도 노동자를 언급했는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에서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만 말했다. 또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에 우리나라의 전시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오신 많은 분도 포함됐다"고도 말했다. 이는 '합법적으로 병합한 식민지 자국민을 동원령에 따라 소집한 것'이라는 전형적인 일본 측 논리였다.
일본 측이 오는 13일 추도식 일자도 다소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시점에서 불참을 결정한 또 다른 요인은 시간"이라며 "남은 기간을 감안할 때 추도식 이전까지 만족할만한 접점을 찾고 준비 기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추도식의 일자와 형식, 내용은 모두 한·일 간 협의 대상이지만, 일본은 행사의 핵심이 돼야 할 과거사 언급을 배제한 채 형식적으로 행사를 치르고 ‘매년 약속대로 개최했다’는 명분만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도 자체 추도식을 열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일본 측 추도식 바로 이튿날 사도광산 옛 기숙사터에서 유족을 비롯해 주일 한국 대사와 외교부 당국자가 참석하는 별도 행사를 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족들이 불참 결정을 "대체로 이해해줬다"며 자체 추도식을 위해 "추워지기 전에는 (사도섬에)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이재명 대통령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처음으로 취임 후 첫 양자 외교 방문 국가로 일본을 선택하며 한·일 관계에 순풍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일본의 캘린더성 역사 도발 등 과거사라는 구조적 난제가 여전히 양국 관계를 옭아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일 외교와 관련해 “현안을 뒤섞지 않겠다”(지난 6월 대통령실 브리핑) “오른손으로 싸워도 왼손은 잡는다”(지난 7월 취임 한 달 기자회견)며 과거사와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를 강조했지만 일본은 말 그대로 어떠한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가 얽힌 세계유산 문제에서 갈등의 불씨가 재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한·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근대산업시설(군함도 등)을 둘러싸고 사상 처음 국제무대에서 표 대결을 벌였다. 당시 한국은 충분한 표를 확보하지 못해 군함도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하는 데 실패했다. 일차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태도 변화를 거부한 일본의 책임이 크지만 사전 교섭과 준비에서 허점을 드러낸 한국 정부의 외교력 부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올해도 반쪽짜리로 결론이 난 추도식은 지난해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전 한국이 강제징용 역사를 알릴 '전시관' 설치와 함께 받아낸 최소한의 후속 조치였다.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full history)가 반영되지 않으면 등재를 위한 컨센서스(전원 합의)를 막아서겠다고 했던 한국이 입장을 선회했던 것도 일본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5년 7월 등재됐던 군함도 문제와 판박이로 일본은 강제성 언급이 빠진 전시관과 한국이 보이콧할 수밖에 없는 추도식을 여는 등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동시에 한국 정부 역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 만한 외교적 지렛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