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박한슬의 숫자 읽기] 내년 기우제를 막으려면

중앙일보

2025.09.04 08:12 2025.09.04 13:3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박한슬 약사·작가
얼마 전 강릉에서 기우제(祈雨祭)가 열렸다.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식수 제한이 벌어지자, 시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연 행사다. 목 타는 더위에 치성(致誠)을 쏟는 마음은 절박하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우제가 아니라 굳건한 치수(治水) 정책이다. 강우량은 하늘에 달려있어도, 물 사용과 관리는 사람에 달려서다. 사람이 쓸 수 있는 민물은 빗물의 형태로 유입되고, 하천을 거쳐, 바다로 유출된다. 유입량은 통제할 수 없으니, 일찍이 발달한 게 저수(貯水)다. 하천을 막아 댐을 만들거나, 별도의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모아두거나, 이웃한 속초시의 사례처럼 아예 지하댐을 만드는 사례도 있다. 안타까운 건, 이런 저수시설을 만드는 데도 한계가 분명하단 점이다.

하천에 댐을 만들면 댐 상류는 말 그대로 수몰된다. 수몰 지역에선 반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1971년 안동댐이 착공되며 댐 상류에 있던 도산서원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전국 유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소를 올려 도산서원을 보존한 사례처럼,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반발은 나온다. 쓰레기 소각장 선정에도 어려움을 겪는 현재의 정치환경에선 수몰 지역의 반발을 누르고 진행해야 하는 대형 댐 건설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화 이후에 건설된 대형 댐이 사실상 한 곳도 없는 이유다.

김주원 기자
그러니 댐 건설과 같이 정치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거대 과제보단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누수(漏水)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 환경부 ‘상수도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상수도의 누수율은 9.9% 수준이다. 수돗물 100L를 기껏 정수해서 상수관으로 흘려보내도, 약 10L가 가정집 수도꼭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소실된다. 더 큰 문제는 누수율이 지자체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시의 상수도 누수율은 1.6%에 불과하지만, 물 부족을 겪는 강원도는 누수율이 20.7%로 서울시의 12배에 달한다. 광주광역시를 제외한 호남 전체도 20%, 부산·울산·대구 등의 광역시를 제외한 영남 전체도 20%, 제주는 아예 누수율이 42%에 육박한다.

지역별 누수율 차이가 극심해진 건, 상수도관 관리 책임이 지방자치단체에 있어서다. 선심성 공약이나 본인 치적을 위해 흉측한 공공조형물을 만드는 데는 수십억을 지출하면서, 일한 티가 나지 않는 인프라 보수엔 인색한 태도를 보여서다. 늦게야 상황을 확인한 정부가 2016년부터 국비를 쏟아부어 노후 상수도관 교체를 진행하고 있으나 진행은 더디다. 2016년의 전국 누수율이 10.6% 수준이었는데, 현재도 9.9%로 감소하는 데 그쳤다. 지자체 인프라 보수에 돈을 아껴, 지역민이 기우제를 지내야 하는 게 현재 지방자치제도의 현실이다. 이럴거면 지자체 국고보조금에도 일종의 ‘목적금’을 설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박한슬 약사·작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