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출신 소프라노 전월선(田月仙)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83년 일본 대표 오페라단인 니키카이(二期會)에서 데뷔, 40년 넘게 세계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한·일 문화교류와 친선에 기여한 공로로 재일교포 예술인 최초 훈장 ‘욱일 단광장’을 받았다.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전월선이 기획·제작한 오페라 ‘더 라스트 퀸-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비’가 오는 11월 19~20일 한국 초연으로 서울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무대에 오른다. 일본 황족 출신으로 일제에 의해 고종의 막내아들 영친왕(본명 이은)과 정략결혼했던 이방자(일본명 마사코, 1901~1989) 여사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둘 사이 오간 사랑과 아픔을 모노 오페라로 풀어냈다. 일본에선 2015년 초연해 호평을 받았고, 이후 재연을 거듭하며 1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그를 지난 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Q : 왜 이방자 여사였나.
A : “3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경복궁·창덕궁을 둘러보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황족 출신 이 여사와 영친왕은 진짜 마음을 보일 수 없었다. 오직 이 여사의 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그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을 꺼내 전달하고 싶었다.”
Q : 일본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A :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고들 했다. ‘오랜 역사의 조선 왕조가 왜 멸망했나’ ‘한국의 왕이 될 사람이 왜 일본에 왔을까’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된 거다.”
Q : 어쩌다 오페라에 빠졌나.
A : “15살 때 학도병으로 일본에 끌려왔던 아버지가 아리랑 같은 한국 노래를 가르쳐줬다. 어릴 때부터 동포들을 위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예술인을 꿈꾸게 됐다. 음악대학에 진학한 뒤 마이크도 없이 내 몸 하나로 승부할 수 있는 오페라에 매력을 느꼈다. ”
Q :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A : “일본 국립음대 입학원서에 한문으로 내 이름을 적었는데, 학교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 충격이었지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Q : 프리마돈나가 된 후 한국을 찾았다.
A :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했다. 4년 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일본 대중음악을 개방한다고 해서 다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전후 처음으로 일본어로 노래할 기회였다. 그런데 동요나 가곡은 괜찮았는데, 내가 골랐던 곡 하나가 허가가 안 됐다. 한·일 양국이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요아케노 우타(夜明けの唄·새벽의 노래)’라는 곡이었는데, 결국 가사 없이 ‘아~’라고 노래해야 했다.”
Q : 한국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 “한국과 일본 관계가 많이 좋아졌지만,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 마음 아프다. 역사를 알지 않으면 결국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또 재일교포로서 늘 고국을 잊지 않았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