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관세소송 지면 무역합의 무효화" 트럼프 이 말, 실현 가능성은

중앙일보

2025.09.04 13:00 2025.09.04 13:3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각료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상호관세 소송에서 지면 한국·일본 등과 체결한 무역합의가 무효화(unwind)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폴란드 대통령과 회담에서 관세 소송에 대해 “(미국은) 다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질 기회가 있지만, 그 사건을 이기지 못하면 다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질 수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심 역할을 하는 미국 연방 순회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근거가 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게 수입규제 권한은 주지만, 그 권한에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IEEPA를 근거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무효라는 얘기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고, 판결 효력은 10월 14일까지 정지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9일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도 “상호관세를 부과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와 무역 협상에 지장을 주고 상대국의 협상 지연이나 보복 관세를 막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호관세 폐지→무역 합의 파기→국익 훼손’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으로, 상호관세 폐지 여부의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연방 대법원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원칙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지난 7월 30일 한국과 체결한 무역 합의는 효력을 잃게 된다. 상호관세 제도 자체가 무효가 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전의 관세 체계로 회귀하는 구조다.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에 대한 구두 합의도 명분을 잃게 된다. 기업들은 이미 지불한 관세의 환급을 청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대법원의 판결에도 무역 협정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결이 현 판세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며 “만약 항소법원 판결을 대법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트럼프 행정부에선 다른 법률 근거를 찾아서 관세 부과 조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1일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무역법을 활용해 국가안보와 산업을 보호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행정부 차원에서 법적 리스크를 피해갈 수 있는 대안(플랜B)을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다.

베센트 장관이 제시한 차선책은 1930년 대공황 시절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 338조다. 해당 법률은 대통령이 특정 국가가 무역에서 미국을 불공정하게 차별한다고 판단할 경우 의회의 동의 없이도 50%의 관세를 최대 5개월간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관세법 338조는 역사상 한 번도 실제로 발동된 적이 없다. 이 밖에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적용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하는 것도 거론된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에 고율 관세 부과가 가능하다. 불공정 무역 관행 근거로 보복 관세가 가능한 무역법 301조도 활용될 수 있다.

대법원 판결 전망에 대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소 유리할 것이란 평가가 많다. 2심까지는 법리적 해석에 집중한다면, 대법원 판결에는 정치적 판단이 고려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대법원의 보수적인 구성 역시 트럼프 행정부에 다소 우호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에는 대통령의 외교적 결정에 있어서 ‘사법 자제의 원칙’을 우선시하는 전통이 있다”며 “대통령의 외교적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고, 법제 해석상 문제가 생겼을 때는 법원이 대통령의 재량과 판단을 존중해 왔다”고 설명했다.



김원([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