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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 없인 못 살아요” 소녀 셋 홀린 52세의 주사기

중앙일보

2025.09.04 13:00 2025.09.0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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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마약, 절박함 위에 핀 독의 꽃


끝이 없는 유혹의 굴레
때 이른 더위가 숨을 조이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 통의 다급한 신고가 무전기를 타고 울렸다.

"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요. 약물을 했어요. "

현장으로 출동한 형사와 119 구급대가 전한 첫 보고는 짧고도 무거웠다. 신고자는 열일곱 살, 아직 교복이 더 익숙할 나이의 소녀였다. 온몸을 떨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형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호흡은 거칠었고, 심장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요동쳤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해 응급처치를 진행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 SNS에서 만난 남자랑… 모텔에서 마약을 했어요. 길을 걷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무서워서 신고했어요. "

미성년자가 모르는 성인 남성과 모텔에서, 그것도 마약을 함께 투약하다니,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었다.
현장팀은 곧장 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마약 전력이 있는 서른세 살 남성을 검거했다.

후배들이 올린 검거 보고서 한쪽에 적힌 이름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김민지(가명, 17세).
일러스트 미드저니, 이경희 기자

불과 1년 전, 그녀는 낯선 성인 남성과 마약을 함께 투약하다 적발되었다.
그 사건의 수사 책임자가 바로 나였다.

보고서 속 몇 장의 사진과 기록만으로도 그날이 떠올랐다.
모텔 방 안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얼굴,
조사실에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선명하게 겹쳐졌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녀는 다시 같은 길을 선택했다.
마약은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끝없는 유혹의 굴레였다. 소녀는 또다시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품었던 작은 희망은 무력감으로 변해, 나를 다시 1년 전 그날로 끌어당겼다.

1년 전 그날은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추석 연휴였다.
도시는 평소와 달리 한산했고, 고속도로는 설렘을 안고 달리는 차들로 붐볐다.
한가로운 오후의 정적을 깨운 건 112상황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 여기… ○○호텔인데요. 지금은 말 못해요. 경찰차 타지 마시고, 그냥 빨리 와주세요. 경찰인 거… 밝히지 말고요. "

처음엔 장난전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형사에겐 오랜 경험에서 오는 직감이 있다.
숨죽인 음성, 조심스러운 단어, 그리고 이상할 만큼 조용한 배경음.
이건 단순한 장난전화가 아니었다.
뭔가 사건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우리는 곧장 ○○호텔로 향했다.
501호 문을 열자, 앳된 얼굴의 소녀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열일곱 살, 이지은(가명).

" 친구들이랑… 어제부터 마약했어요. 지금은 약 구하러 나갔고요…, "

그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가족 품에서 웃음꽃을 피워야 할 명절에, 이 아이는 호텔방에서 마약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호텔 CCTV 영상엔 두 명의 소녀가 방을 나서 외출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잠시 뒤, 소녀들은 돌아왔지만 이지은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녀들은 문을 두드렸는데 답이 없었다.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가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이 없자, 결국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 그 아저씨, 그냥 마약을 꺼냈어요…. "

우리는 이지은을 경찰서로 데리고 왔다. 조사실에 앉은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긴장으로 손끝이 떨리는 듯했지만, 그 눈빛만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단했다.

간이시약검사 결과는 필로폰 ‘양성’ 반응.
순간, 조사실 공기가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윤 형사가 차분히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니? 누구랑 있었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소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절이 너무… 싫었어요. 갈 데도 없고, 같이 있을 사람도 없고…. 그냥 공허했어요. 그래서 정윤주(가명, 18세)한테 연락했어요. 소년원에서 같이 있었던 언니예요.”

그렇게 만난 정윤주는 또 다른 친구 김민지와 함께 있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눈 것도 잠시, 김민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야, 빨리 가야 돼. 늦었어.”
“어딜 가는데?”
“몰라. 가보면 알아.”

세 사람은 J구의 ○○모텔로 향했다.
이미 방이 예약돼 있었고, 곧 50대 초반의 남성이 나타났다. 처음엔 단순히 모텔비를 대신 내주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김민지와 SNS로 만나기로 한 남자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겁났지만… 친구들 앞이라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냥 웃는 척하면서… 지켜봤어요.”

남자는 가방에서 주사기와 하얀 가루가 담긴 지퍼백을 꺼냈다.

그는 먼저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윤주, 민지에 이어 지은의 팔에까지 차갑게 주사기를 들이댔다고 했다.

“얼음장 같은 액체가 혈관을 타고 퍼지는 느낌이었어요…. 순간 몸이 무겁게 가라앉고,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졌어요.”

그 사이, 친구들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웃고 소리를 질렀다. 모텔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 웃음소리는 이미 비명처럼 울리고 있었다.
일러스트 미드저니, 이경희 기자

" 너희… 미성년자 아니야? 당장 나가! 안 나가면 경찰 부른다. "

그들은 쫓겨났다. 또 다른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선 더한 게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그 아저씨 없인 못 살아요.”
10대 소녀를 지옥에 빠뜨린 남자. 밥 잘 사주고, 잘 곳도 마련해주던 그 남자는 어느 순간 돌변했다.


52세 강지욱. 추적 끝에 찾아낸 그 이름, 형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소녀 3명을 나락으로 보낸 그 남자의 정체는 뭐였을까.

“그 아저씨 없인 못 살아요” 소녀 셋 홀린 52세의 주사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9506

※이 글은 필자의 실제 경험을 기록한 개인적 의견일 뿐, 경찰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유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박원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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