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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전문가가 본 신냉전 구도 "중·러 업은 김정은, 핵 포기 않을 것"

중앙일보

2025.09.04 13:00 2025.09.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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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선 것과 관련 미국의 전문가들은 “비핵화 협상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고 진단했다.

3일 천안문 열병식에 블라디미르 푸틴(왼쪽부터)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깨를 마주했다. 연합뉴스
중앙일보의 긴급 설명에 응한 전문가들은 특히 김정은이 최소한 상징적 의미에서 중국과 러시아 정상들의 지원을 동시에 얻어내면서 “향후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중국 및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대북 협상에 베이징이 상수로 부상”


한반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김정은이 방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강화된 러시아와의 밀착이 중국과의 오랜 동맹을 훼손시키지 않았음을 중국에 확인시키는 방식으로 강한 대중 관계를 회복한 점”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차량에 올라 군대를 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나이더 교수는 특히 “김정은과의 대화 재개를 기대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동시 또는 사전 협의가 불가피하게 될 수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동시 지원을 확인한 북한은 앞으로 핵 보유 인정,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포함한 북한이 주장하는 방식의 종전,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면 대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김정은의 방중은 미국이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하는 상황을 활용해 중·러와 동시에 관계를 개선할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계산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동시에 중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야망에 동참할 뜻을 밝히면서 미국 주도의 질서를 거부하는 고위급 국제 채널을 통해 국제사회에 복귀하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라며 “이러한 자리에 딸 김주애를 동행하게 한 것은 김주애를 4대 세습의 후계자로 내세워 자신의 권위를 이어가려는 계산된 움직임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저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보도국은 김정은 동지께서 9월 2일 현지시간으로 오후 16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베이징에 도착하시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통신이 발행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동행했다. 연합뉴스


“미국과 동맹국 흔들기”…결속력엔 의문


브루스 클링너 맨스필드재단 선임연구원은 “북·중·러의 협력은 국제 제재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미국과 동맹국 사이를 이간질하는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안보 정책 실행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유럽 정상들과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안을 논의하고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의 수장″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X 캡처

클링너 연구원은 “3국의 동맹이 진정한 연합체인지, 아니면 거래적 관계의 집합체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점은 이들 권위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지속적으로 유예하면서도 동맹국엔 관세 부과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동맹국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이러한 태도는 동맹국들이 중국보다 오히려 미국이 더 즉각적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했고, 경제 분야를 넘어 장기적으로 안보 파트너로서의 신뢰까지 손상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적 접근 방식 때문에 반(反) 미국 연대의 성격으로 주목받았다”면서도 “각국이 독립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아직 실질적 운영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이 동시에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지난달 22일(현지시간) '트럼프는 모든 것에 대해 옳았다!'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햄리 소장은 “북한의 김정은이 이러한 한계를 알면서도 베이징행을 결정한 배경은 실질적인 성과보다는 그동안 러시아와 밀착하며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김정은이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게 될 경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서두르고 있는 대화 재개가 시급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직접적 타격은 트럼프의 대중국 봉쇄 정책”


스나이더 교수는 북·중·러가 강한 연대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 자체가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트럼프의 시도가 명백한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전승절) 80돌(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사실을 4일 보도했다.   뉴스1

그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를 이끌 리더십과 고전적 가치를 포기하면서 중국이 자신감을 드러낼 ‘문’을 열어준 셈이 됐다”며 “문제는 중국이 아직 글로벌 리더 역할을 맡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 질서 확립이 아니라 전세계적 혼란과 위기,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 커졌다”고 우려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중국은 2차 대전 이후 이어진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끝났고, 미국이 과거와 같은 리더십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알리며 자신이 새 질서의 지배적 행위자가 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와 북한뿐 아니라 인도(SCO회의)까지 참석한 것은 이러한 중국의 메시지가 국제적 호소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며 “중국은 이를 통해 미국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보다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경제위원회 산하 중요 군수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며 포탄생산 및 기계공업부문 실태를 점검했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의 위헌 논란 등을 거론하며 “대법원에서도 위헌 결정이 유지될 경우 미국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제적 신뢰도와 영향력을 급속하게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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