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16세에 엄마가 된 중등학교 중퇴자에서 제1야당 부대표를 거쳐 부총리까지. 앤절라 레이너 영국 부총리는 영국 정계에서 가장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공영 주택에서 읽고 쓸 줄 모르는 어머니,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위해 3개의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던 할머니 손에 자랐다.
16세 출산에 대해 그는 나중에 "그게 나를 살렸다. 내겐 돌봐야 할 작은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자녀 3명을 둔 싱글맘이다.
지역 돌봄 노동자로 일하던 중 노조 지도부로 활동했고, 2015년 총선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애슈턴-언더-라인 지역구에서 183년 만의 첫 여성 하원의원이 됐다.
2017년 37세 나이로 할머니가 됐을 때 그는 소셜미디어에 '할머니 앤절라'라는 뜻으로 '그랜절라'(#Grangela)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전투적이고 거침없는 언사로도 유명하다.
프레이저 넬슨 텔레그래프 칼럼니스트는 2021년 쓴 칼럼에서 당시 제1야당 노동당 부대표였던 레이너가 학교 중퇴자인 본인을 낮잡아보는 정계의 시선이 오히려 이득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나를 무시하면 당신이 위험할 거다. 산 채로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튀는 이력과 개성을 가진 정치인인 만큼 논란에 종종 휩싸였다. 그중 성차별적인 입방아도 많았다.
2022년 대중지 데일리 메일은 레이너가 보리스 존슨 당시 총리의 주의를 분산하려고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처럼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는 일부 보수당 의원의 주장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레이너는 "변태적인 중상모략"이라고 맹비난했고, 보수당 내에서도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7월 부총리가 된 직후에는 주황, 초록 등 강한 원색 옷을 입고 다우닝가를 오가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고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얼마짜리 옷인지 따져보는 기사를 썼다.
같은 해 8월에는 그가 스페인 휴양지 이비자의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라 DJ 옆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돌았고, 보수당 일각에서 "청소년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레이너 부총리는 방송 인터뷰를 자청해 "나는 내 일을 정말 진지하게 여긴다"며 오페라를 봤다거나 무슨 옷을 입었다거나 하는 업무 외적인 관심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토로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은 레이너 부총리는 이번에는 진짜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은 모양새다.
지역구의 본가 외에 해변 휴양지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세금을 회피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본인도 '실수로' 세금을 덜 냈을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주택지역사회 장관을 겸임하는 최고위 공직자가 부동산 세금을 회피했다면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여성 정치인이라서 외모나 품행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받는다거나, 좌파 정치인으로서 검소하지 못하다고 지적당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문제의 부동산은 남부 휴양 도시 호브에 있는 80만 파운드(14억9천400만원)짜리 아파트로, 주요 거주지가 아닌 두 번째 주택을 구입할 때 내야 하는 추가 인지세 4만파운드(7천500만원)를 덜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레이너 부총리는 3일 낸 성명에서 이번 사태에 이른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한 신탁 개설, 남편과 이혼에 따른 본가 주택 지분 분할, 신탁으로의 지분 양도 등 복잡한 과정이 있었고 신규 아파트 취득 시 인지세와 관련해 받은 법률 조언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고위 공직자 규범 자문위원에 본인 사례를 조사해 달라고 자청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4일 레이너 부총리가 고위 공직자 규범을 깬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를 경질할 것인지 BBC 방송의 질문에 답변을 거절했다.
출범 1년도 되기 전에 장·차관 여러 명이 낙마했고 각종 논란 속에 우익 포퓰리즘 영국개혁당에 지지율도 밀리는 등 고전하고 있는 스타머 정부에서 레이너 부총리가 살아남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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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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