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한 딸 주애가 공식행사에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각에선 주애의 이번 동행이 북한의 후계 구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란 관측이 나왔지만, 방중 기간 노출을 최소화한 그의 동선으로 볼 때 이런 분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5일 오전 김정은의 방중 결과를 보도하며 주애에 대한 언급이나 사진 등을 싣지 않았다. 주애는 지난 2일 오후 김정은이 베이징역에 도착했을 때 김정은 바로 뒤에 중국 안보라인 수장인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서열 5위) 등과 만나며 인사를 나누며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때문에 정부 안팎에선 김정은이 이번 방중 기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는 자리에 주애를 대동할지가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통 혈맹’인 중국 정상에게 자녀를 소개한다는 건 그를 김정은의 후계자로 공식화하는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김정일과 김정은도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 전 중국 지도자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의 공식행사와 관련한 보도에서 주애와 관련한 언급을 일절 내놓지 않았다. 5일 오전 까지 공개된 주애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 2일 김정은이 베이징역에 도착했을 당시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서 포착된 모습이 전부였다.
김정은은 예상과 달리 지난 3일 중국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공식 행사인 열병식·리셉션 현장과 4일 북·중 정상회담에 주애를 대동하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의전 담당인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같은 기간 베이징 외교무대에서 김정은을 분주하게 수행하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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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주애…기록영화에선 모습 드러낼까
주애의 이런 로키 행보 배경에는 시진핑이 미국의 패권에 맞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하는 외교무대에 주애를 등장시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 중국 측의 의중이 작용했을 수 있다. 또 만 12세에 불과한 주애가 정식 외교 무대까지 감당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당국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주애의 노출을 최소화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의 방중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내놓는 사후 선전 영상(기록영화 등)에서는 주애가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오후 김정은의 도착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과 주애가 수행 간부들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과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을 공개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내부적으로 후계자 문제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외부의 가장 중요한 두 파트너인 중·러 정상 앞에서 딸을 노출함으로써 사실상 '국제적 승인 절차'를 먼저 밟은 셈"이라며 "이는 북한식 후계 정치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내부 정치의 불안정성을 외부 공인으로 보완하고, 외부의 보증을 다시 내부 선전에 활용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지적이다.
반면 여전히 주애를 후계자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김주애를 국제무대까지 노출 시킨 건 일차적으로 핵 개발에 대한 비난 여론을 희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후계 구도가 거론된다는 자체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도가 높다는 점을 활용해 자신의 선전 도구로 쓰는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