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의 중과실이 인정되면 고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허위보도에 대해 손배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사실상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손해액의 최대 3~5배로 상한을 정한 다른 법과 달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배상 규모의 상한을 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계가 부작용을 우려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노종면 의원은 5일 이런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을 공개하고, 10월 추석 연휴 전 확정된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론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닌 ‘배액(倍額) 손해배상’ 제도라는 표현을 썼다.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배액으로 배상 금액을 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위는 ▶고의 허위 보도 ▶중과실 허위 보도 ▶허위 보도 인용·매개 등으로 나눠 각각 N배씩 차등 배액을 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배상액의 상한이 얼마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다룬 23개 법의 3~5배 상한 규정 방식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지 못하다고 우리는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배상액을 정할 때) 3~5배의 고정적인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법원이 (배상액을) 증감을 할 때 몇 배까지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증감을) 할 수 있다라고만 할 것인가 검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결국 재판 과정에서 배상액이 손해액의 십수 배에 달하는 결과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개정안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미국에서 허위조작 보도로 900억원 넘는 징벌적 배상 선고가 있었다. 이 정도는 돼야 징벌적”이라며 “우리가 도입하려는 건 배액 배상 정도”라고 썼다.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허위 조작보도’의 대상도 논란이다. 민주당은 대상 보도를 ‘허위 사실 또는 조작된 정보를 고의 또는 중과실로 다중에 알리는 보도물’이라고 규정했다. 즉, 고의가 아니라도 중과실(重過失·중대한 실수)이 인정되면 허위 조작보도로 본다는 것이다. 유튜브 방송에 대해선 언론중재법에서 다루거나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언론중재법에 준용하는 방식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특위는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 대기업 등 권력층의 무분별한 배액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해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에 불복할 경우 일반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토록 규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층이라고 하더라도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언론중재위 결정이 취소되면 배액 손배해상 청구도 가능하도록 열어두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치인이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겨냥해 배액 손배소를 제기하는 길을 열어둔 독소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고위·중과실 입증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청구인(피해자)이 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고의·중과실로 추정되는 경우 이차적으로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특위는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은 별도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민주당의 속도전으로 인해 논란은 커지고 있다.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통화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액에 상한을 두지 않고, 정치인을 견제·비판하는 기사에도 거액의 손해배상 여지를 열어두는 것 자체가 언론을 엄청나게 위축시키는 언론 재갈법”이라며 “검찰·사법부에 이어 언론까지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언론단체도 반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어붙이기식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언론징벌법, 억압법, 취재 봉쇄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에는 방송통신위원회 해체 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설치하는 걸 골자로 하는 민주당의 ‘방통위 개편 법안’을 놓고 여야가 공청회에서 충돌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방통위가 해체되면,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자연스럽게 해임되는 게 쟁점이었다. 최형두 의원은 “이 위원장을 교체하는 법안이란 것 외에는 긴급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방통위는 윤석열 정권에서 방송 장악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더는 개편을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25일 본회의에서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안도 처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