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은 5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2000년대 초반부터 회장직을 맡아온 레비 회장이 사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레비는 “토트넘을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시킨 지난 시간이 큰 자부심으로 남는다. 이제는 팬으로서 구단을 응원하겠다”는 작별 메시지를 남겼다.
레비가 부임하기 전 토트넘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중위권을 맴도는 ‘애매한 명문’이었다. 하지만 레비 체제에서 토트넘은 꾸준히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하는 클럽으로 변모했다.
2007-2008시즌 잉글랜드 리그컵 우승, 2016-2017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4-2025시즌 유로파리그 우승까지. ‘빅이어’와 리그 정상은 끝내 잡지 못했지만, 토트넘은 언제나 유럽 대항전 무대의 단골손님이었다.
레비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건 그의 철학이다. 철저한 재정 관리와 주급 체계를 고집하며 ‘짠돌이 회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이 같은 운영 방식은 구단의 재정 건전성을 보장했다.
또한 협상 테이블에선 악명이 자자했다. 가레스 베일, 루카 모드리치, 해리 케인 등 세계적 스타들이 토트넘을 떠날 때마다 레비의 ‘끝까지 버티기’ 협상술은 늘 화제를 낳았다. 상대 구단은 진땀을 흘려야 했고, 토트넘은 최대 이윤을 남겼다. 팬들은 그의 방식을 두고 찬반이 갈렸지만, 레비의 냉철함이 구단을 지탱해온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레비 시대는 단순히 ‘짠돌이 운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장기적 비전을 내다보며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감행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축 홈구장, 최첨단 훈련장, 아카데미와 유소년 시스템까지.
토트넘은 더 이상 낡은 명문이 아니었다.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클럽으로 거듭났다. 레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토트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건 타이밍이다. 불과 몇 달 전, 손흥민이 MLS LAFC로 이적하며 10년 동행을 끝냈다. 손흥민은 토트넘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 시장에서 구단의 얼굴이었다. 그의 퇴장은 구단 팬덤과 브랜드 가치에 직격탄이었다.
그리고 손흥민이 떠난 직후, 레비마저 사임했다. 구단의 두 상징이 거의 동시에 퇴장하며 토트넘은 거대한 공백과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됐다. 팬들은 “SON과 함께 레비 시대도 끝났다”며 허탈해하고 있다.
토트넘은 이미 새로운 리더십을 발표했다. 비나이 벤카테샴 CEO 체제와 피터 채링턴 비상임 회장이 구단을 이끌 예정이다. 채링턴은 “레비의 헌신에 감사하며, 토트넘은 안정 속에서 발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케인, 손흥민, 레비. 토트넘의 전성기를 대표하던 이름들이 차례로 떠난 뒤 남은 건 불안한 현재뿐이다. 에베레치 에제와 니코 파스 영입 실패 등 최근 이적 시장에서도 번번이 좌절을 겪고 있다.
레비의 퇴장은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다. 25년간 이어진 ‘레비 시대’의 종말이자, 손흥민과 맞물린 토트넘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제 구단은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