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음악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작곡가 에릭 세라(66)는 뤽 베송 감독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다.
'니키타'(1990), '그랑블루'(1993), '레옹'(1995), '제5원소'(1997) 등 베송 감독의 세계적 히트작부터 최신작 '도그맨'(2024)까지 거의 모든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며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둘의 협업은 베송 감독이 단편 영화를 만들던 때부터 시작해 4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세라 감독은 지난 4일 개막한 제2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참석 차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개막식에서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상한 그는 마스터 클래스(5일)와 콘서트(6일)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5일 청풍리조트에서 만난 세라 감독은 "먼 나라의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환영 받는 건, 그간 작업한 영화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시켜줬기 때문인 것 같다"며 "기쁘고 특별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Q : 뤽 베송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그와는 18살 때 만났다. 난 밴드의 베이스 연주자였고, 베송 감독은 연출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둘 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었다. 자신의 단편 영화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그의 강한 권유 때문에 영화 음악의 세계에 입문했다. 우리의 첫 히트작인 '서브웨이'(1985) 이후 '그랑블루'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강한 유대감과 신뢰를 갖고 함께 일하고 있다."
Q : 40년 넘게 호흡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영화 감독과 음악 감독은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 인간의 감정과 느낌 등 추상적인 것을 논하기 때문이다. 베송 감독의 주문을 음악적으로 표현해 들려주면 그는 언제나 '바로 이거야!'라며 만족해 한다. 긴 세월을 오해나 불통 한 번 없이 서로 통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Q : '제5원소'의 테크노풍 아리아 '디바 댄스'는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커버하는 고난도 곡이다.
"외계인 소프라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불가능한 음역대와 속도의 노래를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신인이던 소프라노 인바 뮬라가 예상치(60%)를 뛰어 넘어 80%에 근접하게 불렀다. 소름이 돋을 만큼 순수한 목소리였다. 컴퓨터로 내 목소리를 합쳐 완성한 노래를 뮬라와 그의 에이전트가 좋게 평가해줘서 정말 기뻤다.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내가 클래식 전공자들로부터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Q : 자신의 밴드를 결성한 계기는 뭔가.
"베송 감독에게 준 결혼(2004) 선물이었다. 그는 헬기와 섬 등 모든 걸 다 갖고 있으니, 특별한 걸 주고 싶었다. 나처럼 70~80년대 록·재즈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밴드를 결성해 결혼식 날 깜짝 선물로 음악을 들려줬다. 그날 폭발적인 호응에 고무돼 밴드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내 영화 음악을 퓨전 풍으로 연주한다."
Q : 영화 음악을 밴드로 연주하는 게 쉽진 않을 텐데.
"'그랑블루'의 프랑스 개봉 30주년을 기념해 2018년 시네 콘서트를 시작했다. 코로나와 암 투병 때문에 공연을 멈췄다가 3년 전 재개했다. 혼자서 악기 연주하며 음악을 만들다 보니 제대로 된 악보가 없어 힘들었다. 악보 작업과 함께, 영화 이미지와 음악의 싱크를 맞추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Q : 음악이 돋보인 한국 영화를 꼽는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정재일 음악 감독)이 내 기억에 뚜렷이 각인됐다. 단순 명료한 음악이지만, 이미지를 증폭 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줬다."
Q : 준비 중인 솔로 음반은 어떤 것인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우주 비행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우주 비행사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우주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을 주제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게 연말에 발매될 두 번째 솔로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은 'UMO(Unidentified Music Object)'다. 내년 연말에는 밴드에 오케스트라를 더해 내 커리어를 집대성하는 베스트 공연을 할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