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오후 2시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에 디레이 제임스 교정시설. 겹겹이 둘러싸인 철장 안 건물 앞에 제복을 입은 간수의 지시에 따라 30여명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모두 푸른색 수용복 하의를 입었다.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 고개를 떨군 채 손에는 서류 한 장씩을 들고, 한숨을 내쉬며 100여m 옆 조사실로 옮기는 무거운 발걸음이 300여m 떨어진 철장 너머까지도 분명하게 전해졌다. 중앙일보가 포착한 조지아 서배너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공장에서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의 실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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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수용복’ 차림…줄서서 추가 심사
첫번째 그룹이 조사실로 끌려가듯 들어가고 30여분이 지나자 또다른 30여명이 줄을 서서 먼저 들어간 동료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조사를 마친 사람들이 조사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인원이 1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
조사실 내부에서 수감자들의 체류 자격 심사를 진행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다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기업의 투자로 이뤄진 미국 현지 공장의 준공을 앞당기기 위해 급파된 한국 기술자들이 하루 아침에 불법 체류 범죄자가 돼 장기 수감 또는 강제 추방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에 대한 조사는 30여명씩 그룹을 나눠 한참동안 계속됐다. 기자가 시설 밖에서 큰 소리로 “한국인들이 얼마나 있는가” “시설 내부의 상황은 어떤가” 등을 물었지만, 시설의 관리자들이 급하게 가로막으면서 근로자들과의 소통은 이뤄지지 못했다.
시설 관계자는 무기를 소지한 채 “사유지로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오면 체포하겠다. 촬영도 안 된다”며 언성을 높였다. “공유지에서의 취재는 언론의 자유”라고 맞선 기자와의 실랑이가 이어진 끝에 경찰이 출동해 “사유지 밖에서의 취재는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하고 나서야 시설 관계자는 한발 물러났지만, 차량을 세워놓고 취재 과정을 계속 감시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은 지난 4일 장갑차까지 동원한 미국 이민당국의 이례적 단속 과정에서 체포됐다. 손목과 발목에 수갑이 채워졌고, 심지어 온몸에 쇠사슬이 묶인 채 공장에서 170km 떨어진 이곳 시설에 구금됐다. 시설 주변은 휴대전화 전파조차 잡히지 않는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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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노’ 수백명 들어와…여긴 물도 없다”
근로자들이 수감된 구역 바로 옆에는 주황색 죄수복 차림의 수감자들이 있었다. 철장으로 구분된 구역에 있던 수감자들은 “한국 기자”라는 말에 “치노(Chinoㆍ동양인을 비하하는 말) 수백명이 들어왔다”며 “선별 과정인 지금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지만 곧 범죄가 확정된 우리처럼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같이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수감자들은 “여기는 제대로 된 물도 없고 음식도 없다. 한국인들도 다를 게 없을 것”이라며 비아냥조로 웃어보이기도 했다.
근로자들이 구금된 곳은 미국 정부가 아닌 사설업체인 GEO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체포한 사람들에 대한 처리가 결정될 때까지 이들에 대한 관리를 위탁 받아 시행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시설은 국토안보부(DHS) 감사실의 불시 검사에서 지적을 받을 정도로 열악하다. 2022년 6월 보고서엔 “찢어진 매트리스, 누수, 고인 물, 곰팡이, 낡은 샤워 시설, 환기 시스템에 곰팡이와 잔해, 만연한 벌레, 뜨거운 물이 부족한 샤워, 고장난 변기와 냉동고, 따뜻한 식사의 부재”가 지적돼 있다.
또 수감자에게 부적절하게 수갑을 채우고, 수감자의 소유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수감됐던 인도 국적자가 사망했는데, ICE는 사인을 “시설 의료 서비스가 안전 한계를 벗어나 사망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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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금 사흘만 석방 교섭 타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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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구금된 근로자의 석방교섭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구금 사흘만이다. 정부는 앞서 6일부터 구금된 한국인 직원들의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한 영사 면담을 시작했다. 주애틀랜타 총영사관 소속 영사가 오전 9시부터 구금된 근로자들을 만났지만, 신분별 분류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촉 인원은 상당히 제한됐다.
오후 4시께 현장대책반장으로 급파된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시설의 부소장과 면담하고 “한국인 근로자들은 범죄자들이 아니라 미국에 투자한 공장 준공을 위해 일하던 근로자”라며 “이들에 대한 신속한 석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시설의 부소장은 당국의 이러한 요청에 대해 “알겠다. 살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다만 해당 시설은 미 당국의 위탁을 받아 불법 체류자들의 거취가 확정될 때까지 이들을 구금하는 민간 업체다. 근로자들의 석방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란 의미다.
정부 관계자 역시 본지에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추방 실적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의 단속을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해당 사안에 대해 ‘단속 기관이 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결정을 번복하기 더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단속은 한국 기업과 정부에 미국 내 사업 운영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며 “한·미 관계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 당국은 현대차가 8월 사상 최대 판매량을 달성할 당시 수색영장을 확보하고 있었다”며 이번 체포 작전의 배경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