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top·최전방 공격수)’이든, ‘캡틴 손’이든, 손흥민(33·LAFC)은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했다. 그 결과는 2026 북중미월드컵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시원한 원정 승리였다. 손흥민은 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해리슨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평가전(A매치)에서 1골·1도움으로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한국 23위, 미국 15위다.
최근 축구 대표팀에서는 ‘주장 교체’와 관련한 뒷말이 나왔다. 7년 차 주장 손흥민이 지난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로 옮기자 홍명보(56) 감독이 주장 교체를 시사했다. 전날(6일)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던 손흥민은 미국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인 이유를 경기를 통해 증명했다.
손흥민은 모든 이슈를 ‘정면 돌파’하려는 듯했다. 최전방부터 상대를 압박했고, 쉴 새 없이 공간을 만들며 밀고 올라갔다. 전반 18분 이재성(마인츠)이 후방에서 길게 전진 침투 패스를 연결했다. 수비 뒷공간을 파고든 손흥민은 사각처럼 보이는 위치인데도 정확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A매치 52호골(135경기). 차범근의 최다골(58골)에 6골 차로 다가섰다. 전반 43분 도움도 올렸다. 이재성과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손흥민이 미국 골키퍼에 걸려 넘어지며 내준 패스를 이동경(김천)이 발뒤꿈치로 마무리했다.
손흥민은 “(이)재성 선수와 오랜 호흡으로 만들어낸 골”이라며 공을 동료에게 돌렸다. 또 “여기가 한국인지 뉴욕인지 모를 정도였다”며 2만5000석 규모의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응원해준 교민에게 감사를 전했다. “미국 동·서부 시차가 3시간 정도인데, 짧은 시차가 조금 더 힘들 때가 있다”고 농담도 건넸다. LAFC는 소셜미디어에 골 영상을 올리며 ‘Never a doubt(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적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3-4-2-1포메이션, 즉 ‘스리(3)백’을 가동한 홍 감독의 실험은 아직 가다듬을 점은 있지만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이 포메이션은 지난 6월부터 가다듬었는데, 강팀이 즐비한 월드컵에서 수비를 더 두껍게 하려는 전략이다. 3명의 중앙수비수 김주성(히로시마),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한범(미트윌란) 앞에는 미드필더 백승호(버밍엄)와 김진규(전북)가 섰다. 왼쪽 윙어 대신 원톱으로 나선 손흥민에 대해 홍 감독은 “득점과 압박까지 팀을 잘 이끌어줬다”고 호평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대표팀 실정에 중앙 미드필더 숫자를 하나 줄이고, 센터백을 하나 더 넣는 게 안정적일 수 있다. 김민재가 센터백이지만 전진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황인범(페예노르트)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중원에서 볼 소유가 잘 안 되는 약점을 노출했다. 한 위원은 “미국은 웨스턴 맥케니(유벤투스) 등 유럽파가 대거 빠졌다. 또 한국 선수들이 위험지역에서 패스 실수하거나 상대를 느슨하게 놔두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손흥민은 ‘사제대결’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53·아르헨티나) 미국 감독에게 쓴맛을 보였다. 두 사람은 2015~19년 토트넘 홋스퍼에서 감독과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경기 전 손흥민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던 포체티노 감독은 경기 후 “(손흥민은) 아들 같은 선수이자 세계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이라고 칭찬했다. 미국 방송 맨인블레이저스는 “포체티노는 쏘니(손흥민)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법을 알고 있다”고 패장을 비판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미국 사령탑에 오른 뒤 A매치 17경기에서 7패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