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한결 나아질 것 같던 한중 관계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지난달 말 중국을 찾았던 우리 특사단 활동에서 쉽지 않은 한중 관계가 읽힌다. 특사단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측이 ‘일정상 이유’를 들었다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특사단은 또 한한령(限韓令) 해제를 요구했는데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박병석 특사단장의 말처럼 벽에 부닥쳤다.
특사단은 대신 방중 기간 만난 거의 모든 중국 인사로부터 한국 내 반중 정서에 대한 항의를 들었다. “대단히 강한 톤으로 거론했다”는 게 박 단장의 전언이다. 우리 요구는 외면된 채 거센 항의만 받았다. 혹 떼러 갔다가 혹만 붙이고 온 셈이다. 중국이 제기한 ‘반중 정서’는 뭔가.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중국에 대해 갖는 비호감 정서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지난 6·3 대선 이후 한주에 두세 차례 주한 중국대사관이 자리한 명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반중 시위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집회에선 중국 국기가 훼손되고 “차이나 아웃” 같은 험한 구호가 터진다. 많을 때는 수백 명이 모인다. 워낙 많은 시위가 벌어지는 한국에선 일상처럼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중국은 속이 편할 리 없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이 예상되는 경주 APEC이 내달로 다가오지 않았나.
분위기를 띄워도 모자랄 판에 중국인 관광 1번지 명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분노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또 이재명 정부가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한령 완화로 한껏 기대를 모았던 K팝 걸그룹 케플러의 9월 중국 푸저우 콘서트가 갑자기 연기됐다. 말이 좋아 ‘연기’이지 사실상 ‘취소’가 아닌가 싶다. 이재명 대통령의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더는 이어갈 수 없다는 발언 또한 악재다.
중국은 즉각 한중 관계가 제3국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중 관계의 소원함은 곧잘 북·중 관계의 긴밀화로 나타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초대돼 특별 대접을 받은 게 우연은 아니다. 박병석 특사단장은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경천동지할 상황이 아니면 올 것으로 본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낙관만 할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정권 교체 초기 서로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았던 한중이 이제 고차방정식처럼 복잡한 현실 정치의 어려움에 눈을 뜨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