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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한국도 스테이블코인 상용화 대비할 때

중앙일보

2025.09.07 08:26 2025.09.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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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아 실제 화폐처럼 쓰일 수 있고, 블록체인 기반이라 국경을 쉽게 넘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폭발적이며, 대표적 사례인 테더(USDT)는 발행량이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니어스(GENIUS)법을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였을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 금융제재를 피해 러시아 같은 적국에 송금 또한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를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데에는 의도가 있다.

미국 ‘지니어스법’으로 법제화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필수적
법정화폐에 연동돼 사용 늘어나

김지윤 기자
미국의 실익은 크다. 수백 조 원 규모의 시장을 역외 기업인 테더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에 등록된 테더는 미국 법망 밖에서 영업하고 있다. 미국은 법제화를 통해 테더를 자국 규제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지니어스법을 따르지 않으면 3년 내 퇴출당하도록 했다. 일종의 ‘야생동물 길들이기’다.

미국은 또 부채 문제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달러는 초과 수요가 존재하고, 자국 통화가 신뢰를 잃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공공연히 쓰인다. 이들 국가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특히 편리하다.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이 미국 국채로 운용되기에, 스테이블코인 수요 증가는 곧 국채 수요 확대를 의미한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해외에서 원화를 쓰려는 수요가 미미하다. 과거 해외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시도했지만 수요 부족으로 실패했다. 제도화를 통해 미래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은 있으나 현재로선 수요가 적다.

따라서 미국처럼 국채 수요 확대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의 비효율을 줄여줄 수 있으며 블록체인 산업 성장에 필수적이다. 결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여전히 1~2% 수준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비자 마스터카드 등 결제 네트워크 회사의 독과점 구조에 경쟁을 불어넣어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

미국과 다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법제화 논의에서 중요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시장 과열에 따른 소비자 보호다. 아직 제도화되지도 않았지만 업체들의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승자독식이며 운영비는 적게 들지만 수익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테더가 100여 명 인력으로 연간 10조원 이상 버는 것이 그 예다. 국내는 초기 수요가 적어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발행자 규제가 필수적이다. 최소 자본금 요건뿐 아니라 은행과 유사하게 최소 자본비율 규정도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본질적으로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금융기관과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자본금 요건에만 치우쳐 있어 자본비율 규제를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

둘째는 수익의 공적 성격이다. 테더가 매년 수조 원을 버는 주된 원천은 화폐 발행에서 나오는 주조차익이다. 주조차익은 국가 통화의 독점적 발권력에 기인하는 공적 성격의 이익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국가에 귀속될 이익이 민간기업에 돌아가는 셈이다. 은행도 예대마진의 형태로 주조차익을 누리지만, 공공성을 전제로 규제를 받는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어떤 공적 역할을 요구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외환거래 문제다. 앞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송금은 더 늘어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본국 송금에, 해외기업은 무역대금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외국환거래법을 피해 나간다. 더 큰 문제는 미국법 적용조차 받지 않는 테더와 같은 역외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제화를 통해 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도 병행해야 한다.

승자독식적 시장구조에서는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발행자에 대한 적정 규제와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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