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알카라스(22·세계 2위·스페인)가 라이벌 얀니크 신네르(24·1위·이탈리아)를 꺾고 시즌 마지막 메이저 테니스대회인 US오픈 정상에 올랐다.
알카라스는 8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2시간 42분 승부 끝에 디펜딩 챔피언 신네르를 3-1(6-2 3-6 6-1 6-4)로 물리쳤다. 알카라스는 서브에이스(10-2), 위너(42-21), 전체 획득 포인트(112-89) 등 대부분 수치에서 앞섰다. 이로써 2022년 대회 우승자인 알카라스는 3년 만에 챔피언에 복귀했다. 메이저대회 통산 우승 횟수를 6회로 늘렸다. 우승 상금은 500만 달러(약 69억4000만원). 알카라스는 지난 7월 윔블던 결승전에서 신네르에 당한 1-3 패배도 설욕했다. '삭발 투혼'이 통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알카라스는 이번 대회에 머리를 푸르스름하게 짧게 깎고 출전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알카라스는 이번 우승으로 9일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신네르를 제치고 2023년 8월 이후 2년여 만에 1위를 탈환하는 겹경사를 맞는다. 반면 신네르는 US오픈 2연패와 메이저 5승이 좌절된 데 이어 2024년 6월부터 지켜온 세계 1위 자리에서 65주 만에 내려오게 됐다. 신네르는 펠릭스 오제알리아심(27위·캐나다)과의 대회 4강전 도중 복부 통증을 겪으며 결승전을 앞두고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 남자 테니스는 이로써 '빅2'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군림하는 양강체제는 본격화됐다. 폭스 스포츠는 "숙적인 알카라스와 신네르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는 앞으로 계속된다"고 분석했다. 이제 막 전성기 접어든 2003년생 알카라스와 2001년생 신네르가 독주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실제로 두 선수는 지난해부터 메이저대회 우승을 양분했다. 알카라스가 이날 US오픈 정상에 서면서 지난 2년간 메이저대회 우승 횟수도 4-4로 균형을 맞췄다. 알카라스는 지난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 올해 프랑스오픈과 이번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신네르는 지난해 호주오픈과 US오픈, 올해 호주오픈과 윔블던 챔피언이다. 두 해에 걸친 8차례 메이저대회에서 두 선수가 우승을 독식한 사례는 2006∼07년의 라파엘 나달(39·2회 우승·스페인)과 로저 페더러(44·6회 우승·스위스·이상 은퇴) 이후 처음이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올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 이어 3회 연속으로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맞붙은 진기록도 세웠다.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결승 무대에 같은 선수들이 3회 연속으로 오른 건 2011년 윔블던과 US오픈, 2012년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 결승(4회 연속)에서 잇따라 대결한 노바크 조코비치(38·7위·세르비아)와 라파엘 나달(은퇴·스페인) 이후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처음이었다. 알카라스는 신네르와 상대 전적에서 10승5패로 격차를 벌렸다. 메이저대회 전적만 놓고 봐도 알카라스가 4승2패로 앞섰다. 신네르는 올해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는 기복 없이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불과 2년 사이에 메이저 4승을 쌓는 집중력을 보였다.
팬들의 관심은 둘 중 누가 먼저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우승)'을 이루는가에 집중될 거로 보인다. 알카라스는 이제 내년 1월 열리는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 신네르에 앞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다. 신네르 역시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퍼즐 조각 하나만을 남겨뒀다. 호주오픈 다음으로 내년 5월 열릴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면 된다. 역사적인 둘의 경쟁은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스포츠맨십에 더 빛난다. 알카라스는 우승 후 "신네르가 올 시즌 이룬 업적은 믿을 수 없다. 그를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났다"고 말했다. 신네르는 "알카라스가 나보다 훨씬 잘했다. 나도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한 번의 듀스 끝에 서브 에이스로 챔피언십(우승) 포인트를 따낸 알카라스는 활짝 웃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고는 준결승전에 이어 다시 한번 '골프 스윙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알카라스는 '골프광'으로 유명한데, 이번 대회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스페인 골프 선수 세르히오 가르시아(45·스페인)와 골프를 칠 예정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알카라스는 또 대회 직전 올해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 레전드 로리 매킬로이(36·북아일랜드)를 만났다. 매킬로이가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알카라스의 훈련장을 찾으면서 만남이 성사됐다고 한다.
한편, 이날 결승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아 직관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통령 방문으로 보안이 강화되면서 관중 입장이 늦어져 경기가 48분이나 지연됐다. 트럼프가 US 오픈에 참석한 건 대선 후보였던 2015년 이후 처음이다. AP는 스위스가 트럼프의 고율 관세를 부과받은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 초청으로 경기를 관람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