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효과인가…'80년 묵은 과거사' 해소하는 우크라-폴란드
2차대전 당시 살해당한 폴란드인 유해 발굴…양국간 갈등 해소 첫걸음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80년 묵은 과거사 갈등 해소에 나섰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날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에선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살해당한 폴란드계 주민의 42명의 유해를 재매장하는 장례식이 열렸다.
가톨릭 사제와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들이 공동으로 집전한 장례미사에는 유족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폴란드는 이날 재매장된 유해가 1945년 우크라이나 지하 무장단체에 의해 집단 학살된 민간인 중 일부로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에 의해 수만 명의 폴란드 민간인이 살해됐다는 것이 폴란드 측의 추산이다.
우크라이나 서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구(舊)소련과 협력해 나치에 대항하던 폴란드 지하조직의 거점이었다.
문제는 소련이 우크라이나 독립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폴란드계 무장단체를 활용하면서 폴란드계와 우크라이나계 무장단체가 반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민족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폴란드계 주민을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추방하고, 우크라이나계 주민을 동남부 폴란드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이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선 80년 가까이 과거사 문제로 진통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하 무장단체를 독립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폴란드는 이들을 전쟁범죄를 저지른 집단으로 비난했다.
21세기 들어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의 집단 매장지에 대한 유해 발굴을 요구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협조하지 않았다.
일부 발굴이 허용된 이후에도 다양한 이유로 작업이 중단됐다.
이 같은 상황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급변했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국제사회의 원조가 절실한 우크라이나를 위해 폴란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테르노필 지역의 유해 발굴을 허용했다.
안드리 나조스 우크라이나 문화부 차관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갈등으로 기뻐할 나라는 러시아뿐"이라며 "러시아에 그런 선물을 줄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과거사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나조스 차관은 "현재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의 갈등을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