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살던 할아버지가 손수 우사(牛舍)를 지으셨다는 말을 듣고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낡음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해요.”
방수연(27)씨는 2020년 제주도의 한 노부부가 귤밭을 가꾸고 소를 키우며 살던 땅 800평을 매입했다. 이후 녹슨 철제물을 그대로 두고, 소 여물통에는 식물을 심었다. 외양간 분위기를 살려 이듬해 말 이색 카페를 열었다. 숙박시설 3채를 짓는 것까지 포함해 약 20억원을 투자했다. 방씨는 “이 공간을 처음 보자마자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며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면서 평일 40~50명, 주말엔 100명 가까운 손님이 찾고 있다. 내가 공간을 팔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꼽은 민간 주도 농촌빈집재생 우수 사례다. 지난 3일 이곳을 찾은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제 빈집은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주는 자원”이라며 “(빈집재생 사업은) 정부가 약간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자원을 투입하고 제도를 보완하면, 나머지는 민간이 투자하고 가꿔가는 구조”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새 정부 핵심과제인 민간의 빈집재생 지원 체계를 확립하고자 ▶빈집은행 서비스 ▶민관 협업 빈집재생 모델 개발 ▶‘농어촌빈집특특별법’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구소멸 대응,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어촌 빈집 7만8000호 중 활용이 가능한 4만8000호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플랫폼 ‘농촌빈집은행’을 운영 중이다. 기존 귀농ㆍ귀촌 통합플랫폼인 ‘그린대로’를 통해 농촌 지역 빈집 매물 매매ㆍ임대 거래를 주선하는 서비스다. 지난달 21일 개설한 지 열흘 만에 3건의 거래가 성사됐다. 현재 19개 시ㆍ군이 참여 중이며, 1000만원부터 6억원까지 다양한 가격대 매물 91건이 올라와 있다. 지역협력 공인중개사로 올해 8월 기준 138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에겐 매물 등록 6개월 이내 거래 성사 시 1호당 50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농식품부는 빈집재생을 포함한 빈집정비 예산도 올해 15억원에서 내년 123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그간 각 지자체로 흩어져 있던 농촌빈집재생ㆍ철거 지원 사업을 농식품부로 일원화해서 철거보다는 재생ㆍ활용 지원에 방점을 두기로 했다. 연내 ‘농어촌빈집특별법’ 제정도 추진한다. 빈집정비사업 시행 특례, 빈집재생 확산을 위한 정보 제공, 빈집정비지원기구 설치 등이 주된 골자다.
전남 강진, 경북 청도, 경남 남해에선 민관 협업으로 빈집을 정비해 청년ㆍ생활인구 등의 창업ㆍ업무 공간(워케이션 등), 주거ㆍ체류 공간, 주민과의 공동이용시설(마을 도서관ㆍ영화관 등)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올해 하반기 중 농식품 모태펀드 투자 범위에 ‘빈접정비’를 추가해 민간의 빈집재생 투자를 유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