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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공장 동료들 "영어 못하면 더 강압적으로 수갑 채우고 강제 연행" [르포]

중앙일보

2025.09.07 23:26 2025.09.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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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 단속으로 쑥대밭이 된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인근에 위치한 한 게스트하우스엔 지난 4일(현지시간)부터 주인 없는 방 3개가 생겼다. 불법 체류자로 몰려 체포된 한국인 직원 3명이 쓰던 방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뤄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이곳엔 8명 가량의 한국인 직원들이 머물렀지만, 3명이 체포돼 시설에 구금됐다. 체포되지 않은 직원들은 본사의 '즉시 귀국' 명령에 따라 단속 직후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임태환 조지아 동남부 연합한인회장은 7일 중앙일보에 “한국인 직원 8명이 투숙하고 있었는데, 단속 이후 3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며 “간신히 체포되지 않고 귀가한 이들도 본사의 ‘즉시 귀국’ 지시를 받고 대부분 귀국한 상태”라고 말했다.



짐만 덩그러니…재떨이엔 ‘한국산’ 담배 꽁초


지난 4일(현지시간)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뤄진 미국 조지아주 엘레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인근의 게스트하우스. 이곳엔 8명 가량의 한국인 직원들이 머물렀지만, 3명이 체포돼 시설에 구금됐다. 체포되지 않은 직원들은 본사의 '즉시 귀국' 명령에 따라 단속 직후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게스트하우스의 빈 방은 이미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임 회장은 “현대차와 LG 관계사 직원들이 체포 작전 직후 일정을 훨씬 앞당겨 귀국길에 올랐다”며 “시설에 구금된 3명의 짐이 있는 방은 아직 청소하지 못하고 일단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구금 시설에서 곧장 귀국하거나 추방될 경우 짐을 한국으로 보내줘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이 떠난 게스트하우스 밖 재떨이엔 한국산 담배 꽁초가 보였다.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단기 체류자였다는 의미다.

미 이민당국의 대규모 단속을 이뤄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인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재떨이에 한국산 담배 꽁초가 놓여 있다. 이곳에 있다 체포된 근로자들이 단기간 머물렀음을 의미한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한국인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던 주변 다른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은 물론, 직원들이 기숙사처럼 사용하던 집들도 갑자기 텅 비었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본지에 “단속 직후 투숙객 대부분이 즉시 출국길에 올랐다”며 “이번 단속으로 숙박시설을 비롯해 음식점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생존’ 근로자 “중범죄자 다루듯 했다”


근로자들의 단골 식당엔 체포를 피한 사람들이 모여 검거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검거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셉 김(가명)은 “나는 영주권자이고 미국 법인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풀려났다”며 “반면 단기 비자로 온 한국 근로자들은 중범죄자처럼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의 이뤄진 대규모 검거 과정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강제로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단속반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를 먼저 열외한 뒤 비자의 종류에 따라 근로자들을 강압적으로 분류해 강제로 벽을 보고 서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충분히 소명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며 “오히려 소통이 잘 안 되면 더 강압적으로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연행해갔다”고 전했다.
6일(현지 시간) 조지아주 포크스턴 구치소에 수감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당국자 인솔에 따라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2025.09.07.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체포를 피했다는 동료들도 “중앙일보를 통해 푸른색 수용복을 입고 구금된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며 “모두 전문 기술자로 왔을텐데 남의 나라에서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본 한국의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고 했다.




검거 당일 외부에 있던 이유 등으로 참사를 피한 한 하청업체 근로자는 “애초에 경제활동이 가능한 주재원 비자(L-1 또는 E-2)나 하다 못해 인턴용 비자로 입국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포된 사람 중 대기업 소속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인 이유는 대기업이 돈이 많이 드는 정상적 비자 발급 대상을 본사 직원으로 최소화하고 비용과 위험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겼기 때문”이라며 “5~6차 하청업체들은 비용 때문에 B1, B2와 같은 단기 방문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제)로 직원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현지 하청업체 소속 제임스 박(가명)은 “2005년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건설 때는 주지사와 협력해 단기 비자 소지자가 공장 건설 중에만 임시로 일할 수 있도록 ‘임시 허가증’을 발급했다”며 “이번엔 대기업 원청업체들이 위험 부담을 무책임하게 하청업체에 떠넘기면서 사태를 키웠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현지시간 6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가동이 멈춰서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공장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벌여 한국인 300여명을 포함한 475명을 체포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일괄 ‘자진 출국’ 놓고도 “개인에게 책임 전가”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근로자 전원을 귀국시킨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근로자 모두를 이민법을 어긴 범법자로 만들어 결국 근로자 개인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공관 합동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미국 당국이 우리 기업의 현지공장 건설현장에서 불법체류 단속을 벌여 한국인 등 475명을 체포한 사건과 관련 내용을 다루었다. 연합뉴스
불법 체류로 적발된 경우 크게 자진 출국, 강제 추방, 이민 재판 등 3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현지 변호사에 따르면 강제 추방의 경우 당사자는 미국 입국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재판을 받을 경우 시간 및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날 구금된 인원 모두에게 자진 귀국 동의서 작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자진 귀국은 법 위반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불법 체류 기간이 180일을 넘지 않으면 미국으로의 재입국이 가능하지만, 위법 기록이 남기 때문에 ESTA 발급 등을 장담할 수 없다.

현지시간 6일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에 위치한 불법 체류자 구금 시설에 수감된 한국인 근로자들은 푸른색 죄수복을 입고 추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중앙일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이날 시설의 관계자들과 면담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포크스턴=강태화 특파원
정부 관계자는 “강제 추방되면 사실상 재입국이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진 출국을 택했다”며 “다만 이럴 경우 ESTA와 B1 비자가 허용하는 단순 회의 참석을 포함해 무죄에 해당하는 사람까지 불가피하게 위법을 인정해야 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근로자에게 동의서를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만약 개인이 위험 부담을 안고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전세기 탑승을 거부할 경우 정부로서는 막을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나쁜 선례’될 가능성…“현지 여론에도 악영향”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당국의 대대적 불법체류 단속이 이뤄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 주말인 7일까지 공장은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채 미국 현지 하청업체 직원 일부만 공사에 투입됐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대미 투자 업무를 다수 담당해온 로펌 넬슨 멀린스의 앤드류리 변호사는 “자진 출국이 빠른 해결책인 것은 맞지만, 죄가 없는 사람까지 유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할 경우 유사 사례에 대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근로자들이 귀국한 뒤 새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도 대미 투자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한인들도 이번 사태가 지역내 여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 공장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서 실제 고용 효과는 미미하다”며 “이미 현지 채용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가중된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인 불법 고용’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경우 여론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당국의 대규모 체포 작전이 진행된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인근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임태환 조지아 동남부 연합한인회장이 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그는 이어 “울산이 ‘현대 시티’가 된 이유는 지역내 상당수가 해당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돼 있기 때문인데, 서배나에 한국의 대규모 공장이 있지만 한국 기업과 관련된 가정은 거의 없다”며 “장기적으로 지역내 상생 구조를 만들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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