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긴축 재정을 위해 내건 총리직 신임투표라는 승부수가 조만간 판가름 난다. ‘구멍 뚫린 배’와 다름없는 재정 상태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게 바이루 총리의 주장이지만 불신임에 따른 내각 붕괴 수순이 불가피하다고 외신은 내다봤다.
8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한국시간으로 오후 10시)부터 바이루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한다. 절차는 바이루 총리에 이은 10개 교섭단체의 연설 등을 거쳐 참석 의원의 다수 의견을 따르는 가·부결 투표로 구성된다. 결과는 오후 7시30분(현지시간·한국시간으로 9일 오전 2시30분)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투표는 바이루 총리가 자진해 제시한 선택지다. 그는 막대한 공공 부채에 긴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7월 440억 유로(약 71조6000억원) 규모의 감축 내용이 포함된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여기엔 연금 동결, 보건의료 예산 삭감, 공휴일 2일 폐지 등이 담겼다.
하지만 야당과 여론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바이루 총리는 신임투표로 배수진을 치는 동시에 설득전에 나섰다. “정치적 자살”이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그는 지난달 31일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현재 프랑스의 상황을 "선체에 구멍이 뚫린 배"에 비유한 뒤 “정부가 무너지면 지금 추진 중인 정책은 버려질 것이고, 이는 국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바이루 총리는 “지난 20년간 부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매시간 1200만 유로(약 195억원)씩 증가해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5년 말부터 2025년 1분기까지의 부채 증가액 2조2284억원을 시간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였다.
실제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국가총생산(GDP) 대비 2023년 109.8%에서 현재 113.9%로 치솟았다. 또 지난해 재정적자는 5.8%로 유럽연합(EU)이 정한 3% 한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불신임에 무게가 실린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좌파 계열 사회당 모두 불신임 표결을 공언하고 있다. 긴축 재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오는 10일과 18일 예고돼있는 등 여론도 바이루 총리에게 적대적이다. 로이터는 “승산이 거의 없는 만큼 바이루가 이번 연설에서 기록 또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놓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바이루 총리가 물러날 경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재정 분야뿐 아니라 국정 운영에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CNN은 이런 혼란에 대해 “프랑스가 사실상 통치 불능의 나라가 된 듯하다”고 꼬집었다. 지금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마크롱 대통령의 자충수에서 비롯됐다고 보면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RN이 두드러진 성과를 낸 데 조기 총선 결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과는 극우와 극좌로 분열된 의석수였다. 이 같은 전례로 마크롱 대통령이 또 조기 총선을 결정할 가능성은 낮다고 외신은 보고 있다.
의회 소수파로 전락한 상황에서 새 총리 임명도 마땅치 않다. CNN은 “중도 성향 총리 세 명이 연이어 실패한 탓에 좌나 우에서 새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서로 진영에서 가로 막을 것”이라며 “마크롱은 ‘드골이 연 안정의 시대를 끝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해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