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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3670’과 ‘3학년 2학기’의 미덕

중앙일보

2025.09.08 08:12 2025.09.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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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인간은 사회적 존재’. 당연한 말인데, 가끔 반발심이 든다. 특히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기성세대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거나 문제로 불거지는 걸 보면, 좀 덜 ‘사회적’이었으면 싶기도 하다.

이런 푸념이 이달 초 개봉한 영화 ‘3670’(감독 박준호)의 20대 청년 철준(조유현)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 같다. 가족을 두고 탈북한 그가 남한에서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더구나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다른 탈북자들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다. 게이 커뮤니티에 발을 내디딘 철준은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온 영준(김현목) 덕에 여러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탈북자란 걸 신기해하면서도 일단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떤 모임이든 새로운 무리에 속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더구나 철준 같은 청년에게 그저 쉬울 리 없다. 영화는 애정과 우정을 아울러 만남과 교류에 대한 기대와 상처가 교차하는 감정의 역동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공감을 부른다.

영화 ‘3학년 2학기’. [사진 작업장 봄]
새로 소속을 찾는 점은 어쩌면 ‘3학년 2학기’(감독 이란희)의 고교 3학년생 창우(유이하)의 상황과도 통한다. 취업으로 진로를 정한 창우는 학교가 소개한 중소기업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중견기업보다 임금은 낮지만 정식 취업하면 병역 특례나 대학 진학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다. 한데 업무 지시는 체계적이지 않고, 부족한 안전 장비를 비롯해 작업장의 위험 요소가 이내 눈에 들어온다. 에이스로 인정받는 또래도 있지만, 창우는 매사 느리고 서툰 편. 단짝과 어울릴 때는 딱 요즘 10대 같은데, 스스로의 책임에 충실한 모습은 어른스럽기도 하다. 영화는 가족 관계까지 포함해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묘사로 창우를, 이 예비 사회 초년생의 진로를 관객이 걱정하고 응원하게 만든다.

같은 날 나란히 개봉한 이 두 독립영화는 앞서 각각 전주국제영화제 4관왕,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등에 오른 수작. 감독들은 물론 배우들도 대개 낯선 이름들인데, 실제 인물을 보는 듯 연기가 빼어나다. 공공연한 악역이 없는 것도 공통된 특징. 이를테면 ‘3670’은 탈북자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재연하거나, 주인공들이 이로 인한 폭력적 상황을 겪게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사회적 처지를 대변하는 대신 개인으로서 인물과 삶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그의 상황을 헤아리고 돌아보게 하는 강점은 ‘3학년 2학기’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내내 긴장을 유지하며 주인공들이 겪는 아픔과 좌절에, 이들이 품는 꿈과 희망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들이다. 영화에는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쓰느라 고심하는 모습들도 나온다. 자소서가 담아내지 못하는 생생한 청춘이, 젊은이들의 모습이 매력을 더하는 영화들이다.





이후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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