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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美 구금사태 '부당한 침해' 규정…"다신 재발 않길"

중앙일보

2025.09.09 00:58 2025.09.0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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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구금된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안전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 국민과 기업의 활동에 부당한 침해가 가해지는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10일(현지시간) 전세기를 띄워 국민 전원을 '자진 출국' 방식으로 데려오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 제도 개선을 신속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미국 이민 당국에 의해 구금됐던 우리 국민이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라며 "갑작스러운 일에 많이 놀라셨을 텐데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조지아 구금 사태 발생 닷새 만에 처음으로 직접 공개 입장을 밝힌 이 대통령은 미국의 조치를 '부당한 침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1회 국무회의에서 참석한 국무위원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은 구금자 전원 자진 출국을 위한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추방 형식이 아니고 자진 출국 형식으로 무사 귀국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가) 하루 이틀 내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불이익이 없는 방식으로 행정절차가 마무리가 거의 됐고 전세기가 내일 출발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국민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한 사태는 너무 충격적이고 정부는 국민 여러분이 느끼는 공분을 그대로 미국에 전달했다"며 "외교적으로 가장 강한 톤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외교적인 용어가 아닌 강력한 항의를 했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가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한층 더 강도 높은 항의를 전달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워싱턴에 도착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9일(현지시간)부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남은 행정 절차에 대한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8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항공업계와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르면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B747-8i 전세기를 투입할 예정이다. 구금된 300여명이 한 번에 탑승할 수 있는 대형 여객기다. 소수의 일본인, 중국인 노동자도 이번에 함께 구금됐는데 이들도 전세기에 탑승할 가능성이 있다. 해당 전세기가 예정대로 10일(현지시간) 오후 애틀랜타를 출발한다면 11일 오후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의 귀국이 완료되더라도 급한 불을 껐을 뿐 비자 문제를 둘러싼 본질적인 과제는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크리스티 놈 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간) 구금된 한국인들에 대해 "추방될(deported)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최종 퇴거명령(removal order) 시한을 넘겨서 체류한 것 이상의 범죄 활동을 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면서다. 추방의 경우에는 기록이 남는 것은 물론, 향후 5년 혹은 10년 동안 미국에 재입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외교가에선 이번 사태가 정부의 설명대로 추방이 아닌 자진 출국 방식으로 마무리되더라도 향후 미국 재입국시 불이익은 불가피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단기 상용(B1)의 경우 현장 교육 등을 위한 사유를 일정 부분 소명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나오지만 주로 미국으로 짧은 여행을 갈 때 온라인으로 발급받는 전자여행허가제(ESTA)의 경우 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금자 상당수는 회의·교육을 위한 단기 B1비자 또는 비자에 해당하지 않는 ESTA만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영옥 기자
또한 자진 출국 과정에서 동의서에 서명하는 것 자체가 불법 체류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돼 불이익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민법 전문인 문상일 미국 변호사는 "이미 구금이 된 상태이므로 이민법 위반 내용에 대해 인정하는 내용을 모두 작성하고 서명까지 마쳐야 자진 출국이 가능하다"며 "자진 출국 기록은 평생 남게 되고 추후 미국 비자 발급이나 재입국은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자진 출국은 불법 상태를 인정하고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불법인가 아닌가는 법원에서 엄격히 다퉈봐야 할 문제"라며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에 한·미 간 협의에 의해 그런 방향(자진 출국)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규모 구금사태를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시급한 건 맞지만 불법 체류가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소명하는 형태로 문제 해결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최고위급 협의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차원의 행정명령이 나와야 구금됐던 한국인에 대한 불이익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한국인만 구제하는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크지 않다.

8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서 대사관 관계자들이 교섭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2012년부터 추진해온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취업비자인 E-4 비자 신설과 미국의 기존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관련 한국인 쿼터 신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계획이다. 김용범 실장은 이날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 삼아 제도 개선을 반드시 해야 한다"며 "대통령실과 백악관에서 필요하면 워킹그룹을 만들어 단기 해법을 찾아야 하고 장기적으로 입법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현재 미국 내 반(反)이민 정서와 배치된다는 우려가 있다. 구금 사태의 원인을 '편법 비자 관행'에서 찾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한국이 법을 어긴 뒤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또한 구금자 중에는 일부 고숙련 인력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협력업체 소속의 기능직 노동자였다. 이때문에 정부가 대책으로 추진하는 전문인력 비자 확대와는 해법이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비자 종류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근로자들이 미국 현지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E-1(상사 주재원), E-2 (투자사 직원) 혹은 H-1B(전문직), 일반 주재원 비자(L-1) 등 취업 관련 비자가 필요하다. H 비자는 임시 근로자로 H-1B(전문직)을 비롯해 H-2A(농업 근로자), H-2B(비농업 근로자), H-3(직업 연수자) 등으로 나뉜다. 이외에 J비자는 교환 방문자, L 비자는 일반 주재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에 구금된 근로자 상당수는 B-1(단기 상용 비자) 혹은 비자에도 해당하지 않는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현주.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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