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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6년 만에 성사된 북·중 정상회담과 이후 행보

중앙일보

2025.09.09 08:20 2025.09.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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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중국의 80주년 전승절을 계기로 6년 만에 성사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으로 북·중·러 3국 연대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빈번하게 회동해왔고, 북·러 정상은 2023년 9월 김 위원장의 극동 방문과 2024년 6월 푸틴의 평양 방문으로 급속 밀착했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 회담 한 달 전이던 2019년 1월의 정상회담 이후 지난 6년간 없었던 북·중 정상회담이 이번에 성사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가 밀착하는 와중에 소원했던 북·중 관계는 전승절 이벤트 이후 전환점을 맞았다.

북·중, 북·러, 중·러 연쇄회담 성사
군사·국방보다 경제·외교에 관심
중, 북 비핵화에 거리두기 공식화

물론 외부에 공개된 북·중·러 3국 정상회담은 이번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 보란 듯 중·러, 북·러, 북·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렸다. 김정은과 푸틴이 열병식 도중에 시진핑의 곁을 지키는 사진이 세계에 전송됐다. 가히 2023년 8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견줄 인상적 장면이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특이 사항이 풍부해 북·중 및 북·중·러 3국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시사점이 많다.

우선 북·중 언론은 양국 정상의 직함을 소개하면서 당 총서기와 당 총비서, 국가주석과 국무위원장 뒤에 나와야 할 ‘중앙군사위원장’이 빠졌다. 김정은의 대표 수행원에 군부 인사들이 배제됐다. 대신 조용원 당 조직비서, 최선희 외무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김덕훈 경제부장 등이 동행했다. 이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관심사는 군사와 국방이 아닌 경제와 외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북한식 사회주의 위업(사업)’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데 중국이 지지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이나 ‘사회주의 경제발전’ 등의 용어를 썼으나 이번엔 ‘위업’으로 표기하면서 광범위한 북·중 협력 의향을 드러냈다.

사실 북·중·러 3국 연대가 한·미·일 3국 연대에 제대로 대적하려면 경제력 보강이 최우선 과제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기간 침체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유증에서 회복해야 한다. 북한은 낙후한 경제 건설이 시급하다. 북·중·러 3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준비를 진즉에 마쳤다. 지난 4년 동안 중·러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 합의서 수십 건을 체결했다. 북·러도 2023년에만 협력 합의서 수십 건에 서명했다. 북한은 2024년 러시아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며 코로나 빗장을 풀었기에 경협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러는 대북제재와 무관하게 각각 북한과 약속한 경협을 이어 나갈 것이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거리두기가 이번에 공식화됐다. 중·러의 북한 비핵화 거리두기 수순은 시작된 지 오래다. 2023년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이 빠졌고, 이듬해엔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도 삭제했다. 이 용어들을 ‘당사국 원칙’으로 변경하면서 중·러는 북·미회담을 종용했다. 2024년 5월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중국 측이 북핵 문제에서 ‘각자의 입장 존중’을 의도적으로 삽입한 이유다.

2022년 9월 북한은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핵보유국의 불가역적 지위’를 선언했다. 핵 포기, 즉 비핵화는 없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를 간파한 중·러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 미국은 함구 중이다. 북·중·러는 경제력을 키워 더 강한 실질적 3국 연대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북 레버리지는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 아직도 옛날 방식의 비핵화 전략에 함몰된 듯해 안타깝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변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일방적인 대중국 견제 전략에 동참할 의향만 드러냈다. 이제 미국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 북한 비핵화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북·중·러가 북·미 대화를 원하는 상황에서 이의 실현을 견인하는 이재명 정부의 유효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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