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8일)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으로 모처럼 조성된 협치 분위기가 하루 만에 차갑게 식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힘을 맹비난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계엄 사태에 대해) ‘우리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장 야당 석에선 고성이 터져 나왔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불과 하루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던 여야 대표가 곧바로 서로 손가락질하는 꼴이 됐다.
취임 직후 야당과 악수조차 거부했던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의 협치 제안에 잠시 호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진정성이 의심받게 됐다. 전날 이 대통령의 “더 많이 가지셨으니 좀 더 많이 내어 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하겠다”던 정 대표의 약속은 결국 빈말이 된 셈이다.
정 대표의 독단적인 언행이 우려스러운 까닭은 정책 전반에서도 독선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의 권한마저 침범하려는 태도가 감지된다. 지난 7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 개혁 문제를 놓고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맞서는 일까지 있었다. 여당의 뜻대로 검찰청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두기로 했음에도, 정 대표는 정부가 진행할 후속 입법안 준비에 당이 직접 개입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우 수석이 “당이 참여하지 말라는 게 누구 뜻인지 아시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정 대표한테 정부 권한을 존중하겠다는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정 대표는 위헌 논란까지 제기된 검찰청 해체를 두고 “추석 귀향길에 검찰청 폐지라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호언했다. 대법관 증원, 내란특별재판부 등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까지 경고가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과도한 규제가 담긴 언론 관련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극소수의 가짜뉴스를 추방함으로써 다수 언론인의 명예를 지켜드리자는 것”이라는 궤변을 반복한다. 이 법안에 대해 진보 언론조차 비판하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결국 정 대표의 어제 연설은 야당을 무시하고 여당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전날 여야 회동에서 “야당을 통한 국민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듣겠다”던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듯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은 야당 의견을 묵살한 채 입법 독주를 벌여 왔다. 정 대표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독선과 독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 대표가 검찰과 언론을 향해 던진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자신에게 되돌려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