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우충원 기자] 토트넘 홋스퍼의 상징과도 같던 다니엘 레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5년간 런던 북부 클럽을 지휘하며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아온 그는 돌연 구단 경영권에서 퇴장했고 손흥민과 해리 케인 등 토트넘의 핵심 선수들이 잇따라 반응을 내놓으며 팬들의 시선을 모았다.
토트넘은 5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다니엘 레비 회장이 구단을 위해 25년 동안 헌신한 여정을 마무리하고 회장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 레비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구단을 장악하며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회장 중 한 명으로 손꼽혀왔다.
레비는 재임 기간 동안 토트넘을 세계적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주역이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신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완공했고, 구단 가치를 프리미어리그 상위권에 올려놨다. 재정적 안정과 상업적 성공이라는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적시장에서 ‘돈을 쓰지 않는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특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협상하기 가장 어려운 인물”로 지목할 정도로 레비의 협상 방식은 악명이 높았다. 값비싼 선수 영입에는 인색했고 핵심 선수 매각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를 고수했다. 공과 실이 뚜렷했던 그의 재임은 결국 구단주 조 루이스 일가의 권력 개편과 맞물려 막을 내리게 됐다. BBC는 “루이스와 가족들은 구단 운영의 새로운 방향을 원했고, 결국 25년간 권력을 유지한 레비를 내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예상치 못한 사임 소식은 곧바로 선수들에게도 파장을 미쳤다. 손흥민은 7일 미국과의 A매치 직후 취재진 앞에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레비 회장은 토트넘을 25년간 이끌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했다. 그가 클럽을 위해 남긴 업적에 정말 감사드린다.” 손흥민의 짧지만 진심 어린 발언은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주장으로서 레비의 공적을 인정한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토트넘의 ‘레전드’로 떠난 케인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케인은 “솔직히 큰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레비 전과 후를 비교하면 토트넘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기장 안팎에서 거대한 변화가 있었고, 그의 기여는 분명했다”며 “앞으로 그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케인의 말처럼 레비 전후의 토트넘은 분명히 달랐다. 2000년 이전의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중위권에 머물렀으나, 레비 체제 이후에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두고 빅클럽들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그의 경영이 만들어낸 결정적 성과였다.
하지만 트로피와는 인연이 없었다. 레비는 구단 가치를 키웠지만 팬들이 원하는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경질, 조제 무리뉴와 안토니오 콘테 등 명장의 잇단 실패도 레비의 책임으로 돌아갔다. ‘구단을 비즈니스로만 본 인물’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따라붙는다.
결국 레비의 사임은 토트넘이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구단주 루이스 일가가 어떤 경영 방침을 내세울지, 그리고 이적시장 정책이 과거와 달리 달라질지 여부가 향후 토트넘의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