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미 이민 당국의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엿새 만에 석방돼 귀국길에 오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오전 현지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만나 구금됐던 이들의 미국 재입국에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마지막 행정절차 협의에 나선다.
10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9일(현지시간) LG와 현대자동차 등 워싱턴 D.C. 주재 한국 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번 조지아주 단속과 관련한 비자 문제를 포함한 애로 사항과 건의사항을 들었다. 조 장관은 "구금된 국민들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귀국시키고 향후 이들이 미국에 재입국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최우선으로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기업 측은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비자) 쿼터 신설, 대미 투자 기업 고용인 비자(E-2 비자) 승인율 제고 등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했다.
정부는 2012년부터 'E-4' 비자(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 신설을 위한 '동반자법'(PWKA) 입법을 추진했고 550만 달러(약 76억원)를 들여 로비를 했지만 미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E-2 비자는 미국과 무역 협정을 맺은 국가의 기업이 미국 내 자회사에 인력을 파견할 때 받을 수 있는 비자지만 최근 수요가 늘어 승인이 까다로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측은 또 조 장관에게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 직원이 미 출장 시 주로 발급받는 단기 상용 비자(B-1 비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재확인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한·미 양국 정부가 적극 협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 국무부뿐만 아니라 국토안보부 등 관계부처가 향후 수립될 가이드라인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보다 적극적인 대미 투자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다. 외교 채널에서의 협의 내용이 실제 이민 정책을 관할하는 국토안보부의 기준에도 반영돼야 현장에서 안심하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이번에 구금된 인원 가운데 상당수가 B-1 비자를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B-1 비자는 기업들이 미국 출장에 활용하는 대표적 비자로 미 국무부 외교업무매뉴얼(FAM)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직접 노동은 안 되지만 장비 설치, 현지 직원 교육, 비즈니스 회의 등은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1 소지자들이 일괄 구금 대상이 된 것을 두고 B-1 비자의 허용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관련 업계에서 나온다.
조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오후 10시 30분)쯤 미 워싱턴에서 루비오 장관과도 만날 예정이다. 이번 구금 사태의 배경을 듣고 재발 방지를 당부하는 동시에 원활한 대미 투자를 위해 비자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구금된 한국인들의 귀국을 위한 전세기 출발이 미국 측 사정으로 연기됐다. 외교부는 이날 "조지아주에 구금된 우리 국민들의 10일(현지시간) 출발은 미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가급적 조속한 출발을 위해 미측과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며 변동 사항이 있으면 알리겠다고 설명했다. 당초 구금된 한국인 300여 명은 자진 출국 방식으로 10일(현지시간) 오후 2시 30분(한국시간 11일 오전 3시 30분) 애틀랜타에서 인천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비자 문제 등은 과제로 남게 됐다. 향후 미국 재입국 과정에서 구금 이력이 걸림돌이 될 경우 장기적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민법 전문인 최경규 변호사는 "가장 좋은 선택지는 자발적 출국(voluntary departure)으로 '입국 제한'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는 불법체류가 1년을 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며 "추방 명령을 받으면 10년의 입국 제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예상되는 오는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내에서 반미 감정을 관리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가장 강한 톤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고 국민이 느낀 공분을 그대로 미국에 전달했다"(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고 밝혔지만 동맹국 국민을 쇠사슬로 묶어 잡아가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미국 측의 구체적인 해명과 재발 방지책 없이는 민심 수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동맹국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 현장에서 대규모 단속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 노동자가 집단 구금된 것은 한·미 협력의 정신과 어긋난다"며 "한국은 미국에 이번 사태 경위 설명과 한국인 근로자 인권 보장, 향후 단속 시 한국 정부와의 협의, 구금 근로자의 신속한 절차·귀국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