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안 먹으면 죽어!" 버럭했다…이어령 아내, 92세 강인숙 후회

중앙일보

2025.09.10 02:00 2025.09.10 13: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노트북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밤 10시부터의 시간을 사랑합니다.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 앉아있어요.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입니다. 나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이구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 92세 강인숙 관장(전 건국대학교 교수·이하 경칭 생략)은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을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 한다.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 체력이 떨어질 땐 하루를 온전히 쉬며 긴 작업을 위한 힘을 모은다. “이젠 눈이 흐려져 오·탈자도 잦다”고 했지만 그것은 작가로서의 은유일 뿐이었다.

남편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의 추억이 가득한 문학관 곳곳을 소개하는 동안 그는 한 번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젊어 본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늙음도 잘 느껴지지 않아요.”

에세이집 『나는 글과 오래 논다』에서 그는 ‘형용사 하나하나 지울 때마다 전율이 온다’고 했다. 매일 밤, 문장들과 마주한 울림 덕분일까. 그의 눈빛은 이날 통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여름 햇살보다 뜨겁게 빛났다.

노인의 생기를 마주하며 ‘눈이 부시다’ 생각했다. 세월이 빚어낸 주름은 오히려 그 눈빛을 단단히 떠받치는, 짙은 배경처럼 느껴졌다.

더중앙플러스에서 연재중인 〈100세의 행복〉(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92) 시리즈 17화는 이어령의 아내가 아닌 문학가, 인간 강인숙을 다룬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세 자녀의 어머니로, 남편 뒷바라지하는 아내로, 대학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살아온 치열한 시간을 따라갔다.

몸무게 35㎏…병약한 워킹맘 시절
이어령 강인숙 부부. 사진 강인숙 관장
늘 새로운 세계에 몰두하던 남편 이어령은 집안일에 무심했다. 세 자녀의 육아와 살림은 오롯이 강인숙의 몫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 읽기는 사치가 돼버렸다. 30대엔 몸무게가 35kg까지 떨어지고 수전증이 왔다. 갑상선에 혹도 자랐다.

내 시간은 걸핏하면 가족들에게 침해 당했다. 그 속에서 나는 형이상학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를 했다. 성과도 없는 그 열망이 삶을 더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갔다. -강인숙 에세이집 『나는 글과 오래 논다』 p.172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갑내기 동창생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일찍이 평론가, 대학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 글 쓰는 것도, 교수가 되는 것도 정확히 10년 뒤떨어졌더라고요. "

그러나 행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글 쓰는 시간을 벌어주는 게 기쁨이었다. 그가 원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해주는 게 평생 가장 뿌듯한 일이었다. 양보하는 것이 강인숙의 사랑법이었다.

강인숙은 2015년 남편이 암 진단을 받고 7년간 곁을 지켰다. 이어령은 항암을 거부하고 공생하는 것을 택했다. ‘죽음은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이라던 그는 나중에 손가락에 힘이 없어져 녹음을 하거나 손글을 써서 겨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누가 말끔하게 살을 발라낸 것처럼 뼈만 남은 것을 지켜보는 세월은 지옥이었다’고 아내는 회상한다.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 있다. 남편이 기력이 없어 먹지 못할 때 음식을 자꾸 권한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안 먹으면 죽는다구요!’하고 비명을 지르니까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안 먹는 게 아니야. 못 먹는 거야’ 그러더라구요. 알죠. 못 먹는다는 걸. 그러면서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남는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업보겠죠.”

※이 기사는 강인숙 관장의 더중앙플러스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강인숙의 사랑과 인생, 이어령의 곁에서 7년간 연습한 죽음, 백세의 행복과 건강 비법, 92세에도 워커홀릭으로 전성기를 보낼 수 있는 이유, 죽음의 철학은 뭘까요. 인터뷰 전문은 더중앙플러스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안 먹으면 죽어요” 버럭했다…이어령 아내, 92세 강인숙 후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65574

추천!더중플 - 헬스+ 100세의 행복

정세희.김서원.서지원([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