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습에 '풍전등화' 가자지구 유물, 극적으로 화 면해
수장고에서 이전 조치…프랑스·유네스코·가톨릭, 공습 유예에 역할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가자시티 내 수장고에 있던 고고학 유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 위협에 황급히 이전됐다고 AFP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이전 작업은 이스라엘 당국이 지난 10일 가자 시티 내 주거용 건물을 공습 표적으로 지목하면서 건물 1층에 있는 유물 수장고를 이전하라고 운영 주체인 예루살렘 프랑스성서고고학학교(EBAF)에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 군은 AFP의 질의에 그런 경고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으나 소식통들은 프랑스와 유네스코,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가 유물 대부분이 이전될 수 있도록 공습 시간을 유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에는 박물관이 둘 있었지만 전쟁 여파로 하나는 파괴되고 나머지 하나는 심각한 피해를 봤다.
이에 따라 EBAF의 수장고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남은 유일한 주요 유물 보관시설이었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이 수장고에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성 힐라리온 수도원을 포함해 가자지구 5대 고고학 유적지에서 지난 30년간 발굴한 유물 약 180㎥가 보관돼 있었다.
유물 이전 작업은 극도로 어려운 여건하에서 이뤄졌다.
올리비에 포키용 EBAF 교장은 "모든 관련자가 극히 위험한 상황에서 수행한 고난도의 작업이자, 진정으로 최후의 순간에 이뤄진 구조 작업"이라며 "국제기구도, 기반 시설도 남아있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운송·노동·물류 작업을 급조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교단체로서 인명 피해를 초래하지 않는 것을 우선 과제로 했다"며 작업이 비밀리에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전 과정에서 일부 소장품이 손상을 받기도 했다.
EBAF 소속 고고학자인 르네 엘터는 "우리는 대부분을 구했다"면서도 "구조 작업에서는 항상 뭔가를 잃게 마련이고 늘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많은 유물이 파손되거나 분실됐지만, 사진이나 도면으로 기록돼 있어 과학적 정보는 보존됐다"며 "어쩌면 책과 출판물, 도서관에 남은 기록이 가자 고고학의 유일한 흔적이 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는 위성 사진을 통해 13세기 파샤 궁전을 포함해 가자지구 내 문화유산 94곳의 피해를 확인했으나, 완전한 목록을 작성하지는 못했다.
EBAF는 폭격에 취약한 데도 노출된 채 있는 독특한 모자이크 유물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가자지구의 고고학 발굴은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시작됐다가 2007년 하마스가 정권을 잡고 이스라엘이 봉쇄를 가하면서 중단됐다.
몇 년 뒤 영국문화원과 프랑스의 비정부기구 프리미어어전스(PUI)의 지원으로 재개됐지만 가자 전쟁으로 다시 멈췄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완전 장악을 검토하고 있고, 휴전 협상도 교착 상태에 빠져 발굴이 재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포키용 교장은 "가자지구에는 민족·문화·종교의 계승과 공존을 보여주는, 이 지역에 매우 소중하고 엄청나게 오래된 유산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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