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새벽에 벌어진 사건은 유독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다. 혈흔이나 족적 등의 휘발성 증거가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고, CCTV 영상도 빗물로 흐린 탓에 용의자 특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1일 인천시 남동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도 그랬다.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의 고가도로 아래서 택시기사 이모(43)씨가 살해됐다. 주변은 화훼농가가 서너 군데 있을 뿐인 황량한 공터여서 평소 인적이 드물었다. 하수도 역류를 일으킬 정도의 강수까지 더해지니 목격자도 없었다.
그나마 고가도로 아래가 택시기사들의 막간 휴식처라는 점에서 약간의 운이 따랐다. “사람이 죽어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양모(40)씨의 신고로 비교적 이른 시점에 관할인 남동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 출동할 수 있었다.
이씨의 목덜미와 가슴, 다리에 칼로 찔린 자상만 17군데. 거기다 목에는 노끈으로 졸린 듯한 삭흔이 있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나 질식사, 혹은 둘 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 결박됐던 듯 한 손은 노란끈에 묶인 채였고, 다른 손은 축 처져 있었다.
사체는 일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으로 보내 유전자 감식을 맡길 테지만, 아무 단서도 없는데 다짜고짜 용의자 추적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 그때 현장에서 5분 거리인 미추홀구 관교동의 한 골목에 주차된 택시(차종 SM7)에서 연기가 난다는 주민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의 차량이었다. 범인이 증거를 인멸하려고 뒷좌석에 불을 피웠는데 밀폐된 덕에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피해자의 지갑과 더불어 차량에서 일부 현금이 사라진 걸 보면 혐의는 강도살인이었다. 다만 훔친 지갑의 카드가 사용된 내역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범인이 가로챈 액수는 6만원이었다.”(남동경찰서 강력계 형사의 회고)
주말 새벽에 비까지 내린다면 웬만한 택시기사들에겐 자체 휴무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씨는 당시 아내와 한 살 난 늦둥이 아들을 얻어 그날도 일을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형사들은 택시가 버려진 장소를 중심으로 탐문수사에 주력했다. 붉은 벽돌로 된 빌라들이 우후죽순으로 밀집된 주택가다. 누군가는 범인을 목격했을 것이다. 또한 택시에선 피해자의 것이 아닌 B형 혈흔이 세 점 발견됐다. 범인이 다쳤을 공산이 크다. 대형병원 응급실이나 약국도 조사 대상이다.
CCTV 확인조에선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때는 아직 CCTV가 전국적으로 설치되기 전으로 공공시설이나 상권, 범죄 우려 지역 위주로 깔렸다. 거주자가 많은 주택가는 사실상 CCTV 부재 상태였다. 그러니 100m 떨어진 위치에서 CCTV가 발견된 것은 형사들에게 낭보였다. 비록 렌즈를 최대한 확대해야 했고 선명도는 낮았으나 2인조 남성이 택시를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탐문 수사는 잘못하면 파탄난다. 목격자들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마른 놈이 맨땅에 우물을 판다고, 갖가지 진술만 수집하다간 수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덕복 인천시경 미제사건수사팀(이하 ‘미제팀’) 팀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초동수사에서 혈흔을 제외하면 용의자를 특정할 최소한의 실마리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무고한 시민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허위 제보자의 진술에 신경쓰다가 시간을 날려보냈다. 언론은 동네 이름을 붙여 ‘남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라며 기사를 썼고, 인천시경 홍보실은 출입기자단의 진척 상황 문의에 거듭 난색만 표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수사는 중지됐고, 사건은 캐비넷에 미제로 봉해졌다.
“아침마다 피해자에게 빌었다. 제발 도와달라고.” 이덕복 팀장은 회고했다. 2016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인천시경에 미제팀이 신설될 때 초대 팀장으로 부임한 그다. 곧바로 이 사건의 재수사 방침을 내렸으나 수사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미제사건 특성상 수년 전, 십수 년 전 실패한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반면에 새 증거를 발굴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결국 기존의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며 놓친 게 무엇인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외면한 단서는 없는지 찾는 과정의 반복이다.